이런 말은 어떤가. John Wick의 말이다. “인생에는 어떠한 리듬도 이유가 없습니다.” 완성이든 미완성이든 인생살이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저 살라는 뜻인가 싶다.
그러나 전인권은 아니라고 외쳤다. 인생은 의미 투성이라고 노래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성만이 해답이 아니라 미완성도 해답일 수 있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 가슴에 묻어버리고” 완성만이 리듬이 아니고 미완성도 리듬이지만 사실 그 모두가 삶의 한 축일 뿐이라는 뜻이다. 의미가 없다는 말은 의미가 너무 커서 의미를 버리고 싶다는 강변일지도 모른다.
한 해가 갈 무렵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냥 그것대로 가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을 뜯어내면 다시 새 달력이 걸리듯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철학자의 리듬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삶의 리듬일 뿐이다. 어느새 한해의 마지막 즈음에 서있다. 얼마나 세월이 빠르게 가고 오는지 서유석의 노래가 새삼스럽다. 서유석은 호기롭게 이런 노래를 했다. “너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그러나 아무리 그 노래가 절창이긴 하지만 늙음을 위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역시 금년도 미생(未生)의 삶이었다. 완주하지 못한 미완의 삶. 바둑에서 두 집 정도로 잃어버린 패착. 마치 시 한편을 쓰다가 마지막 결구를 찾지 못해 끝내 펜을 놔버리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나 그런 미완성이 어찌 금년뿐일까. 돌아보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삶 자체가 미완이요 미생이며 아쉬움이 아닌가. 어차피 인생 자체가 미완성이라는 고금의 말은 진리다.
미국생활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대강의 짐을 싸들고 서울로 나간 적이 있었다. 가서 일단 미완성의 줄들을 끄집어내 다시 이어볼 구상을 했다. 도미(渡美)전에 세교가 깊었던 이문동 초당(草堂)댁에 갔는데 그분은 귀국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차라리 거기서 다시 설계해보라는 당부였다. 그때도 한 해를 보내는 세모(歲暮)즈음이었다. 당시 초당은 초로(初老)의 여걸이었으나 막상 당신도 허무하게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삶에 지쳐있는 듯 했다.
초당은 그날 자신이 일군 모든 삶이 부질없음을 한탄하며 아직 30대 후반인 인간의 무대가 어찌 한국 미국으로 나누겠느냐며 이왕 간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라고 권고했다.
그는 내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마장동에 사람을 보내 연한 등심 몇 근을 사오게 하여 때맞춰 내리는 눈을 보며 설야멱(雪夜覓)의 기분을 냈고, 식후엔 갈근차까지 우려내며 석별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듯 서울에서의 모든 방문은 언제나 미완이었다. 오겠다는 데도 가라는 분위기였다. 누구하고든 충분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항상 어떤 시간을 미뤄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몇 해인가가 흐른 후 초당도 떠났다.
왜 나는 미완의 관계가 많은지 모르겠다. 모든 인간관계가 짙고 질겼으나 거의가 다 미완성의 관계였다. 그래서 그런 미완성을 회고하면 아득한 운무(雲霧)에 휘말려드는 비감이 서린다.
젊었을 때는 완성이 인생이라고 여겼고 삶이 완성을 향해 질주하는 열차와도 같다고 생각했으나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고 허세였다. 누구든 작별을 말로 한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달력을 뜯는다 해서 새로워지는 건 어디에도 없듯이.
그러한 미완의 실상은 무엇인가. 인생이란 여전히 자유하지 못하고 단단한 자기 감옥에 살고 있는 까닭인지. 미생처럼 번뇌의 나뭇가지를 쳐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가. 그러므로 완성이 없다하여, 끝내지 못하고 미진하다 하여 자괴의 염(念)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나는 여전히 작고 보잘것없는 조각임을 깨닫고 있음이다. 내가 나를 중요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깨면 어느 날 미생은 퍼즐처럼 맞춰져 완성되기도 하겠지만, 아직도 시의 결구를 찾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서 뒹구는 시처럼, 그것은 그것대로 삶의 한쪽을 채울 수도 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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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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