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적자 메우려 국채 ‘무한정 발행’ 탓
▶ 미국 국가채무 36조 달러 돌파 ‘눈덩이’
▶시장 신뢰 떨어지고, 러·중 탈달러 공세
▶ 전략자산 축적에 차세대 기술 선점 등
▶ 비트코인 활용 달러 체제 기초 다잡기
▶ 암호화폐 자체보단 달러 패권에 초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해 7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가장 극적인 입장 변화로는 암호화폐 관련 정책이 꼽힌다. 과거에 비트코인을 “가치 없는 투기자산”이라고 비난했던 그는 지난해 대선 당시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무게중심은 ‘규제된’ 암호화폐 시장에 있었지만, 전 세계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대통령’이라며 환호했다. 사실 트럼프의 정책은 암호화폐 자체보다 ‘달러 패권’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유일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막대한 쌍둥이(재정·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모순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묘수’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 대한 공세적 견제, 차세대 혁신기술 선점 등의 전략이 내포돼 있다.
미국 달러가 글로벌 통화로 기능할 수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다. 무역 상대국에 달러가 흘러가서 사용돼야 가능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제조업 약화와 금융·서비스 중심 재편과 맥을 같이한다. 다만 유동성 과잉에 따라 달러 가치는 불안정해진다. 반면 트럼프의 공언대로 미국이 무역흑자국이 되면 달러 가치는 안정되겠지만, 국제무역과 자본거래 위축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 달러가 유일 기축통화라는 사실 자체가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은 58%다. 또 전체 무역·외환거래의 88%에 사용되고 있다. 외환보유고 비중은 1999년 71%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60% 안팎이고, 한때 70%대 중반까지 하락했던 무역· 외환거래 관여율은 오히려 90%에 육박한다. 이들 수치는 달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통화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달러 패권이 여러 측면에서 흔들리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실상 무한정 발행하는 국채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34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의 국가채무는 6개월 후 35조 달러를 돌파하더니 4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36조 달러(약 5경387조 원) 선마저 뚫었다. 연간 이자비용만 1조 달러가 훨씬 넘는다.
이런 가운데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5%를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일반적인 흐름과 달리 국채 이자는 되레 상승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연준과 미국 재무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인용했다.
미국이 외교·무역·안보분야에서 달러를 무기화하는 데 대한 반발도 크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이 지난해 10월 새로운 다자주의 개발은행 창설, 미국 주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대체 등을 공언한 게 대표적이다. 달러 영향권을 벗어난 단일통화 및 결제시스템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참여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지만, 중국·러시아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의미심장하다.
러우전쟁으로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탈달러를 주장하고 있다. 3,000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동결당한 뒤 중국 등 반서방 국가들과의 무역을 대폭 늘린 결과 위안·루블 거래는 40% 이상 급증했다. 실제로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가 첫 번째로 꼽은 달러 패권 위협 요소는 미국의 경제 제재였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조차 “달러의 역할과 연계된 금융제재가 길어지면 달러의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 130여 개 국가의 중앙은행디지털통화(CBDC) 추진도 달러 지배력에 균열을 내는 요소다. CBDC가 국제 결제시스템에 적용되면 달러 우회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태국·아랍에미리트(UAE) 등과 대외거래에서 CBDC를 시험 운용 중이다. 미국은 2022년 CBDC 개발에 착수했지만, 트럼프는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이를 배제한 상태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2022년 이후 금 매입을 늘려온 건 달러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년 사이 금 보유량을 30% 이상 늘렸고, 러시아는 외환보유액의 26%를 금으로 채웠다.
트럼프의 암호화폐 친화적 태도에 대해 ‘비트코이너’를 자처하는 오태민 건국대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는 “비트코인으로 달러를 구축(構築)한다”고 표현했다. 달러 체제의 기초를 다잡는 데에 비트코인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비트코인의 전략자산화를 선언했고, 공화당은 관련 입법에 나섰다.
단순하게만 보면 공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된 비트코인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전략자산으로 축적할 경우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 이미 비트코인 가격은 트럼프의 당선만으로도 10만 달러를 넘어섰다. 충분히 가격이 올랐을 때 매도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트럼프 입장에선 비트코인이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을 동시에 붐업시킬 수 있는 소재일 수 있다.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비트코인 채굴을 셰일가스 사업자들에게 분담시키면 셰일가스 생산을 충분히 늘리면서 가격 하락도 상쇄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의 현물상장지수펀드(ETF)를 주식시장 활성화의 매개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블록체인과 비즈니스의 결합을 촉진하는 스타트업 육성”이라고 분석했다.
탈중앙화의 특성을 가진 비트코인이 국제사회에서 적극 활용될 경우 중국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트럼프의 친암호화폐 전략과 맞닿아 있다. 중국이 한발 앞서 있는 CBDC를 배제한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암호화폐 관련 정책 중 비트코인 못잖게 주목할 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대표 격인 테더(USDT)다. 달러와 1대 1로 연동된 테더는 준비자산의 80%를 미국 국채로 보유해야 한다. 무역·외환거래의 번거로움과 수수료 부담 때문에 테더의 활용도는 급격하게 확산돼 지난해 10월 현재 시가총액이 2,050억 달러(약 300조원)를 넘어섰다. 15개월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건데, 이는 테더가 미국 국채의 주요한 매입 주체가 됐음을 의미한다. 미국으로선 국채 발행의 숨통이 트이면서 재정적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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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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