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금리 왕진 1971년 가을
간매리에서 적금리를 가려면 산모퉁이를 돌아가야합니다. 지름길은 산중턱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환자가 생겼다고 지서장한테서 전갈을 받고 나는 왕진가방을 들고 산중턱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군의관 훈련시 독도법을 배울 때처럼 산을 올라갔습니다. 가을산에는 밤나무도 있고 붉은 낙옆이 밟히기고 했습니다.
얼마 후 적금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은 하얀 연기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꼬불거리는 마을길을 따라서 나는 한 농가에 들어갔습니다.
사랑채로 안내된 나는 환자가 되시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팔십쯤 되신 분은 바지를 내리시고 몸을 맡겼습니다.
나는 왕진가방에서 꺼낸 고무장갑을 끼고 그분의 항문을 내진했습니다. 암처럼 딱딱한 전립선이 커져 있었습니다.
내 손끝에는 5일째 나오지 못하는 굳어진 대변이 만져졌고 그것을 조금씩 후벼서 파드렸습니다.
얼마 후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나왔습니다. 되돌아 오는 산길에서 나는 넘어져서 굴렀습니다. 왕진가방의 내용물이 비탈에 흩어졌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매리로 왔습니다.
그리고 서울 후암동 친정으로 출산하러간 아내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가 있는 면사무소에 가서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처갓집에서는 처형이 전화를 받았으며 내가 첫 딸을 얻었다고, 순산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53년 전 가을, 9월 27일이었나 봅니다.
2 간매리 조합장집 우물
간매리에는 농협 사무실과 내가 일하는 공의 진료실이 있었습니다. 건너편에는 조합장의 집과 우물이 있었습니다. 진료실 옆엔 농협창고도 있고 오른쪽 언덕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작은 기도원에서 할머니 전도사가 어린이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조합장 집앞에 있는 우물가에는 돼지우리가 있었습니다. 딸이 세명인 조합장은 귀가 어두웠고 치아가 엉망이었지요. 똥똥하고 야무진 조합장 부인과 딸들은 월남치마를 번갈아 입어가며 좋아했습니다.
그때 진료소에서 약품들을 환자에게 주고 나는 재충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재충전을 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진료비가 들어오면 월급과 합해서 나의 수입으로 했으니까요.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 기저귀를 언 도랑물에서 빨았던 곳, 연탄불에 주사기를 소독해서 썼습니다. 무의촌에 의사가 처음 온 것 자체가 중요한 때였습니다.
그것이 첫단계 정부의 시책이었지요.
2003년에 우리가 귀국하여 30년 만에 그곳을 다시 방문했는데 진료실 건물은 헐리고 그 자리에 멍멍탕 식당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개 서너마리가 보였습니다.
강원도 원주, 문막으로 가는 빙글빙글 산을 올라가던 길 대신 고속도로에는 아스팔트도 깔리고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가 나오고 우물은 폐쇄되었습니다. 비위생적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경제 발전 덕분입니다.
우리는 얼마전 그때 생각이 나서 결혼 53년 기념으로 아프리카 CHAD에 우물 한개를 LA에서 시작한 SOMANG SOCIETY를 통하여 기증했습니다. 4,000명의 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3 강가의 사체 검진
나는 그때 지서장을 따라 꼬불꼬불 논길 위로 서투르게 자전거를 타고 남한강변으로 따라 갔습니다. 장마, 홍수가 지나간 이틀 후라고 생각됩니다.
잎사귀 두개가 달린 계급장을 단 진급이 늦은 지서장은 나를 남한강변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강물에 떠내려온 시체가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어난 강변에서 지서장과 함께 그 시신의 팔을 한쪽씩 잡고 끌어올렸습니다. 옷이 축 젖은 무거운 젊은 시신이 끌려올라 왔습니다.
범람했던 강물을 배로 건너다가 익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시체검시 후 그 곳 굴암리 이장댁에 들러서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진료실로 찾아온 그 가족들에게 사망진단서를 써 주었습니다.
여주군 강천면 남한강 건너편이 바로 점동면 사곡리가 됩니다.
우연이겠지만 2022년 정월 7일 타계한 국제무역학의 석학 김신행 교수의 묘지가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나에게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의 사상을 처음 알려준 친구입니다.
내 건강이 허락하여 고국을 방문하게 되면 꼭 상석(床石)에 꽃다발 한송이 올려 놓고 싶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정치적 어려움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용서와 자비로 잘 해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
서윤석 국제PEN 클럽,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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