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출근길, 신호등에 멈춰 건너편 숲을 보니 빈 나뭇가지들 사이에 새벽달이 걸려 있다. 일월의 보름달, 울프문(wolf moon)이다. 눈에 갇힌 배고픈 늑대들이 한겨울의 보름달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북미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어젯 밤 한 살 반짜리 손녀를 안고 창 너머로 올려다 보던 그 달인데 밤 사이 창백해져 있다. 해와의 거리가 멀어진 까닭이리라.
신호등이 바뀌어 좌회전을 하고 다시 만난 신호등에서 또 한번의 좌회전을 하면서 보니 멀리 동편 숲으로 빠알간 해가 떠오르고 있다. 동쪽으로는 색을 터트리며 떠오르는 해가 있고 서쪽으로는 색을 잃어버리고 고요히 지는 달이 있다. 고속도로로 접어든 후 가속페달을 밟으면서도 서쪽으로 이울던 달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새벽의 같은 풍경 속으로 출근한 지 이십오 년이 넘어가고 있다. 늘 같은 방향에서 떠오르는 해를 만나고 숲을 지나 큰길을 잠시 타다가 다시 작은 길로 빠진다. 같은 길에서 같은 사물과 풍경을 만나는데 그것들을 스치면서 드는 생각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부유하듯 떠오르는 해를 보면 일몰의 풍경이 겹쳐 떠오른다. 촘촘히 뚫고 나오는 싹의 오묘한 발아가 연두의 숲을 채우는 걸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다 떨구고야 말 빈 숲의 정적이 미리 느껴진다. 물론 나이 탓이리라.
새벽의 텅 빈 상가 건물 파킹랏으로 들어선다. 불이 켜진 곳이라고는 코너에 있는 베이커리와 우리 세탁공장뿐이다. 보일러실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되직한 걸로 보아 이미 두어 탕 정도의 드라이머신이 돌아간 후인 것 같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프레서들이 구석 원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플랜테인 튀김을 먹는 야렛과 루뻬는 멕시코 출신이다. 페루에서 온 휠로메나는 아침부터 빠차망카를 먹고 있다. 작은 키에 땅딸한 몸매, 지게 놓고도 A자를 모르는 영어 실력이지만 사는데 큰 지장은 없어 보인다. 셔츠 다리는 일을 끝내고 나면 건물 청소를 하러 똥줄기가 빠지게 내빼는 뒷모습이 귀여운 친구다. 프레서 중 유일한 남자인 호세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일어서더니 바지 다리기에 열중이다. 날쌘 그의 손 끝으로 다려낸 바지에서 김이 난다.
처음 이 사업을 할 때 블라우스를 다리던 분은 한국분이셨다. 며칠 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별을 받았다. 오랜동안 세탁업을 하다보니 가끔 단골손님들과도 영원한 이별을 한다. 배우자로부터 듣기도 하고 자식들이 찾아와 부모님의 세탁비를 지불하면서 정중하게 도네이션을 부탁하기도 한다. 직원이었던 분이, 그것도 힘든 프레스를 하시던 분이 세상과 작별하셨다는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분이 쓰시던 낡은 프레스 기계를 자꾸 쳐다보게 만들었다.
캐쥬얼화되는 복장과 팬데믹 이후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세탁업은 쇠락해 가고 있다. 한국인의 깔끔한 근성은 세탁업과 잘 맞았다. 다림질로 시작한 윗세대들의 기반이 경영으로 이어졌고 큰도시 대개의 세탁소들은 한국인들이 하고 있다. 공장 뒷켠 어딘가의 공간에서 먹고 자란 아기들도 있었다. 학교가 파하고 나면 그 자리에 작은 탁자 하나를 놓고 숙제를 하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성장했다. 미국의 공교육과 삶의 현장교육을 병행해 받고 자란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튼튼한 주류 직업군으로 스며들고 있다. 유대인이나 이탈리아인들에게서 넘어온 이 사업은 이제 다른 민족에게 넘어갈 수순으로 보인다.
루뻬가 노래를 부른다. 말수가 없는 그녀의 원래 이름은 와다루뻬이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오후가 되었다는 뜻이다. 고된 노동의 지루함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으로 그녀는 주술처럼 노래를 부른다. ‘새벽녘 날은 밝아오는데 나는 달리고 있었죠 태양빛이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로. 태양이여, 내 모습 드러나지 않게 해다오. 이민국에 드러나지 않게 해다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돈 데 보이로 시작한 그녀의 노래는 빠른 템포의 라쿠카라차로 넘어간다. 생존력의 노래, 바퀴벌레라는 천시받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낸 역설의 노래 라쿠카라차를 부르는 그녀의 손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
옷의 얼룩과 구김을 없애주는 곳이 세탁소이다. 어제의 나쁜 흔적을 지우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향해 꿈꾸며 나갈 수 있도록 채비를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계절과 관계없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일을 한다.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의 꿈을 다려주기 위해 뜨거운 다리미들이 움직인다.
불필요한 물질의 미립자가 섬유에 튀어 들어가 만드는 것이 얼룩이다. 얼룩은 묻은 즉시 제거하는 것이 좋다. 부드럽게 다뤄야 사라진다. 대개의 얼룩은 씨실과 날실 사이로 미세하면서도 강한 물바람을 분사시켜 털어낸다. 케미컬을 바른 다음 가볍게 두들기며 달래서 제거하기도 한다. 어떤 케미컬에도 녹지 않고 섬유에 얽혀 들어가 한사코 빠져 나가기를 거부하는 얼룩이 있다. 불용성 얼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도 가끔 얼룩이 생긴다. 그 얼룩이 침착해 자리를 잡기 전에 무언가 부드러운 대상을 만나 지워내야 한다. 사소한 얼룩도 지우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가장자리가 선명해지고 짙어져 불용성이 된다. 가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삶을 무겁게 만든다. 삶의 불용성 얼룩을 지울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섬유에서 얼룩을 빼는 방법처럼 사랑으로 용해시킨 다음 토닥여주는 포용만이 그 얼룩을 없앨 수 있으리라.
오늘 밤에도 울프문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지상의 가난한 것들에게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고 사라질 것이다. 오래 전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온 루뻬가 잠든 지붕 위에도, 아홉식구 한집에 사는 야렛네 지붕 위에도 그 달빛은 앉았다 갈 것이다. 달은 칠십이 다 된 어깨로도 누군가의 꿈을 다려주며 고단한 생을 사셨던 그분의 묘지 위에 오래 머물 것이다. 노오란 제 살을 다 풀어 담요처럼 덮어주고 한참을 앉았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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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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