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이로운 모습의 뉴질랜드 남섬.
미술을 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프랑스어 Oeuvre는 미술가의 작품세계와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방향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다. 예술의 세계에서 ‘Oeuvre’는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개념으로, 성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자신의 개성과 색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방향을 잃고, 무명의 예술가로 사라지거나 반짝이는 순간만 남기고 몰락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더불어, 자신이 만든 ‘Oeuvre’라는 틀 안에 갇혀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 비단 예술가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가수, 배우, 감독, 작가뿐만 아니라 정치인, 그리고 일반인들까지도 자신이 만든 개성과 스타일의 틀에 갇혀 자멸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마치 누에가 스스로 비단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살다가, 나방이 되어 간신히 탈출했음에도 날지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자멸하는 비극적 모습과 닮아 있다.
-누에처럼 고치에 갇힌 인생
뉴질랜드로 향하는 바닷길은 예상보다 길고 험난했다. 남극과 가까운 탓인지 거센 파도와 바람이 끊이지 않았고, 여객선은 적당한 속도를 유지했음에도 배 멀미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본(Seabourn) 여객선은 나 같은 중장년층을 위한 세상이었다. 승객 대부분은 70~80대였고, 그래서인지 선상 분위기는 늘 차분하고 고요했다. 하루 세 끼의 정찬과 끊임없이 제공되는 칵테일, 그리고 푹신한 라운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독서하거나 창밖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크루즈 여행은 단순히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시차가 커서인지 한밤중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선상에 마련된 작은 밤무대 클럽으로 향했다.
-풍만한 자태의 여가수
50여 석의 관객석은 겨우 대여섯 명이 차 있었고, 필리핀 출신 5인조 밴드가 재즈풍으로 편곡한 팝송을 연주하고 있었다. 리드 싱어로 보이는 30대 여가수는 이름이 ‘세이’였다. 그녀는 감미로운 음색으로 늦은 밤을 깨우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마치 ‘룰루레몬’ 요가복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파란 드레스였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긴 드레스는 풍만한 몸매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히프선을 에워싸 흘러 내렸다.
옆자리에 있던 아내는 “스페인 여자 같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하며 혼잣말을 했다. 입안에서 퍼지는 폰세카 포트 와인의 달콤한 여운이 더욱 깊어지는 순간, 그녀는 아쉽게도 겨우 세 곡을 부른 후 잠시 휴식을 취하겠다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 크루즈의 특징이라면 가수가 무대에서 내려와 고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모습이다. 세이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반가워하며 따뜻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47, 27, 17: 무대와 배에 갇힌 인생
세이는 앳된 얼굴과 달리 47세였다. 그녀는 27년간의 무대 생활과 17살 난 아들이 있다는 말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가 “아들은 누가 키우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쿨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닐라에 계신 할머니가 돌봐요. 남편은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제가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 젊었을 때 시골마을에서 수도 마닐라로, 그리고 남편따라 마카오로 옮겨가며 공연했지만 지금은 대여섯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자신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세이는 “그래도 노래를 할 수 있으니 즐겁다”고 말하면서도, 새벽 2시 반에 무대가 끝나면 라운지와 도서관을 청소해야 한다며 현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4시에 잠들어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수영장에서 시작되는 낮 공연을 준비한다고 했다.
“마닐라에서 잘 나갈 때 그냥 살았으면 남편과 오손도손 아들 키우며 잘 살았을 것을 큰 무대를 꿈꾸며 마카오 가면서 남편도 도박에 손대고 결국은 젊은 나이에 객사하고 이제는 6개월 동안 바다 위 2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삶이죠.”
그녀의 말은 누에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고치 안에서 비단을 만들고, 날아오르지 못한 채 자멸하는 누에처럼, 그녀의 인생도 변화된 환경에 갇혀 있었다. 포트 와인의 달콤했던 맛이 한순간 쓴맛으로 변한 듯한 느낌이었다.
-우직한 검사에서 대통령까지, 그리고 그 이후
머나먼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고국소식은 듣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는 먼 훗날 어떻게 평가받게 될까? 명확한 것은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검사로 명예롭게 퇴직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풍파는 없었을 것이며, 계엄령이라는 강수를 두지 않았다면 지금의 혼란과 패착도 피할 수 있었으련만….
그러나 그의 문제는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출범 초부터 정부 인사를 더 포용적으로 하지 못했고, 계속 불거진 부인과 친정 스캔들, 야당과의 갈등을 국민과 소통하며 조율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적 대비
같은 민주공화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정치적 정서와 문화에서 확연히 다르다. 세 번째 부인, 자신이 자초한 온갖 스캔들, 탄핵과 재판을 이겨낸 후 화려하게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강직함 하나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가 풍파 속에 휩싸인 윤석열 대통령.
망망대해에서 바라본 뉴질랜드의 빙하 계곡은 수만 년 역사 속에서 변천하면서도 고요하면서도 장엄하다. 그 속에서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성공을 이룩한 오늘날의 영광과 풍파속의 현재를 돌아보며, 지금의 고난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리더쉽 부재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윤 대통령 또한 그의 Oeuvre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하지 않을까? 선출직이며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그 누구보다 큰 이유를 대통령 스스로 알아야한다.
삼권분립 원칙이나 민주주의 철학들을 논하기에는 이미 버스가 너무 멀리 떠나 있다. 좌파들을 책망하거나, 이념과 정치적 산술을 뛰어넘는 리더십이 무척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누에가 만든 비단이 후대에게 아름답게 펼쳐지길 위해서 수많은 선각자들과 애국지사들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들을 고귀한 삶을 희생했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