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th하면 흔히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5번보다는 차이코프스키의 5번을 더 많이 들으며 성장해 온 것 같다. 어느 작곡가의 곡을 더 좋아하느냐의 성향을 떠나서 차이코프스키의 5번이 더 실존적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베토벤의 5번(운명 교향곡)이 어때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운명 교향곡’은 너무 숭고하다. 빠빠빠 빠- 1악장도 그렇고 4악장에 터지는 승리의 팡파레는 만인이 좋아하는 장엄함을 담고 있지만 삶에서 베토벤이 말하려는 승리가 무어냐고 질문한다면 선뜻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곡은 독일보다는 혁명기에 있던 프랑스 사람들이 더 열광했다고 하며 2차세계 대전 당시에는 처칠 대통령이 (라디오)담화 앞에 꼭꼭 틀어주던 곡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쟁, 승리… 뭐 이런 것들을 연상하지 않고 베토벤의5th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좀 다르다. 전쟁보다는 너와 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존적인(?) 위로라고나할까?
심심하거나 울적할 때 낚시를 가거나 골프를 치는 것을 우리는 실존적인 위로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오락일 뿐이다. 그러면 무엇이 실존적인 위로인 것일까? 여행 중에 뽕작이나 팝송을 듣는 것은 위로일까? 그것 역시 무료함을 달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한 위로를 느끼는 경우는 어떤 역설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다. 즉 시험에 떨어지거나 사고, 불행, 배신 등을 당했을때 무언가 위로를 줄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위로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 가끔 위로를 주는 것은 음악 자체가 어떤 엔돌핀을 돌게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 음악이 될 수 있는 것은 음악은 깨어있는 영혼에게만이 가능한 음악적 특수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록큰롤같은 흥분시키는 음악도 있지만 대체로 클래식은 차분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우울한 랩소디와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클래시컬해서 우울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우울증으로 몇번씩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과 13년간 서신연애를 했었는데 평생 얼굴한번 보지않은 사람과의 순수한 연애는 차이코프스키의 불행한 삶을 이어준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교향곡 4번은 폰 메크 부인을 위해 써진 것으로서, 1878년 그녀에게 헌정되었다. 1890년쯤 십수년간 이어져 오던 폰 메크와의 서신왕래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동성애의 논란이 일었던 차이코프스키였기에 그 절망은 더욱 컸고 그 또한 1893년에 비창교향곡을 남기고 사망하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조로증도 앓고 있었는데 50대에 이미 70대로 보일만큼 노쇠한 그의 모습은 극심한 내면적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비창 등은 단순히 멜랑콜릭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절망의 극점까지 보여준 작품이었다.
배신의 상처, 고독의 밤길에서 밤하늘의 별들이 과연 위로를 줄 수 있을까? 힘든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음악은 내면의 깊은 상처 속에서 하늘에 별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인간이 음악을 듣기 위해 불행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통 때에는 느끼지 못하는, 오직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만이 볼 수 있는 수 많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마치 베토벤이 죽고싶다는 절망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듯 불행 자체가 주는 평정심에서 우리는 어쩌면 지평선 너머에 있는 음악을 볼 수 있는 마음을 되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이코프스키의 5번은 우리를 청소년 시절의 순박함으로 되돌려 주는 상처와 꿈이 있다. 희망이 있기에 좌절이 있고,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산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우울 또 그 속에서의 감사의 울림이 있다. 1888년에 작곡된 것으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중 가장 감미롭고 멜랑콜릭하며 힘찬 작품에 속한다. 특히 4악장에 터져나오는 승리의 팡파레는 절망을 딛고 승리한 차이코프스키판 운명 교향곡으로도 불리우며, 베토벤과는 다른 풍부한 서정미로 가득하다. 마치 허무한 삶에서 불꽃으로 피어나려는 번제… 제전같은 음의 향연이었다고나할까. 사랑하고자하는 저 끝… 무언가가 있기에 아름다운 서정시 하나에 몸무림치는, 차이코프스키의 5번이야말로 아픔과 상처 뒤의 승리와 위로가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교향곡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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