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대보름도 지냈고 하여 선객의 만행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어디론가 나그네길을 떠나보는 기분을 추스르는 것이다.
정월보름은 동아시아 대승불교 전통을 지키는 선원에서는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 날이다. 즉, 겨울 석달 동안(음력 10월보름부터 다음해 정월보름까지) 산문 출입을 삼가고 선원(禪院) 안에서 대중들이 참선정진에 집중하던 수행 생활규칙 준수 즉, 결제(結制)를 풀어서, 밖으로 나아가 개인적으로 여행이나 봉사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의 기회를 맞는 날을 가리킨다. 이는 하안거(夏安居 음력 사월보름부터 칠월보름까지), 참선정진 후에도 똑같이 행하는 것으로, 일년에 두 번 결제와 해제를 통하여 수행의 긴장과 이완의 계기를 삼는다.
원래 해제 후 다음 결제 전까지의 삼개월간을 ‘산철’이라고도 하는데, 그 동안에 하는 행각을 만행(萬行)이라 하며, 여러 가지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것들도 수행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결제 중에 미루었던 일들, 이를테면 치료 등 건강문제, 각종 사무나 책임과제, 수행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에 대한 문의와 상담을 위하여, 해당분야 담당자를 방문하거나 선지식(지혜 많은 선배)들을 찾아 문의하기도 하고, 다음 결제를 위하여 다른 지역의 선원을 미리 가서 사정을 알아보기도 한다.
아울러, 결제 중 자기중심적 수행의 결과와 공덕을 회향(廻向) 즉,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봉사하는 기회를 가지며, 이 또한 수행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만행 중에 수행경험을 세상 현실에서 되새겨 보며, 그를 검증하고 심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필자의 경험을 돌아보면, 해제 때의 기분이 다양했음을 느낀다. 아마 모든 수행자들이 각자 결제기간의 수행과 동참대중들 인연 및 탁마 등의 성취 결과에 따라, 보람에 대한 기쁨이나 부실했음에 아쉬움을 가질 줄 안다.
필자가 처음 선원에서 대중과 해제일을 맞은 곳은 1975년 영축산 극락암 호국선원 동안거를 마치고나서였다. 그 전해에 가야산 해인총림 해인사 법보전문강원(현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사교입선(捨敎入禪)” 즉, 경전이나 어록 등의 교학을 넘어 참선 수행에 들어감으로써, 배워서 아는 바 이론적 교리와 언어문자의 뜻을 몸소 체험으로 검증하고 주체화하자는 결심에서였다.
사실, 그전에도 1968년 출가하여 행자 시절에 성철 방장스님을 시봉하며 화두를 받고 개인적으로 참선을 시작하였었지만, 선원에서 대중과 정식결제 안거하기는 첫 번째였다. 아무튼, 그 때의 과정을 잘 해냈다는 기쁨과 만행에 대한 설렘은 글로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물이나 차 맛을 같이 직접 마셔보지 않으면, 공감되도록 설명하기 어려움처럼.
필자가 극락암 호국선원에서 첫번째 안거시의 조실(祖室) 즉, 수행지도자는 경봉(1892-1981) 선사였다. 당시 팔십여세 노스님 법문은 선원수좌들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많이 알려져, 매달 한번 베푸는 법회에는 경향 각지에서 천여명의 신자들이 모여들었었다. 아무튼, 출가수행자들에게는 “금생에 안 난 셈치고 이것에 목숨을 걸어보라”고 참선경책과 격려를 하셨음이 추억된다.
그곳에서 비롯된 일상적 삶의 지혜가 담긴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처음에 극락암에 갔을 때, 그곳의 소변소를 ‘휴급소(休急所)’, 대변소를 ‘해우소(解憂所)’라는 가리킴을 듣고 미소를 지었던 줄 기억한다. 노스님께서 그를 일반법회 설법 중에 대중에게 언급하시는 것도 들었다. 똑같은 물건의 이름이나 사실도 표현에 따라 그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생활 지혜의 유용한 소통 방편이 됨을 거듭 느껴본다.
사람이면 누구나 음식을 먹으며 소화하고 배설하게 됨은 보편적 자연 생리현상임을 안다. 잘 먹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지만 배설함도 동등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꺼리고 피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가리키고 인식하며 표현할 수 있도록 함이 지혜이다. 잠시나마 급한 일을 여유롭게 하고, 걱정근심을 풀어버리는 곳을 즐기고 누릴 수 있으면 다행이지 않으랴!
그 첫 번째 해제 후에, 수행자들 사이에 훌륭하다고 알려진 전국의 여러 산중 선지식 처소를 방문하였었지만, 다시 극락암으로 돌아와 하안거 결제를 계속하였었고, 다음 겨울에는 조계총림 수선사에서 도반들이 특별결사를 하자며 초청하므로 동참하고자 갔었지만, 그 뒤로 다른 선원 및 일반 사찰에서도 변소가 해우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독자분들도 각자 다양한 업무에 분주한 가운데서도 나름 쉬어감의 여유와 크고 작은 걱정근심을 풀어버리는 후련한 살림을 누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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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 워싱톤무량사 동국대 불교학과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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