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아들 부부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구글 토크를 사왔다. 몇 가지 물어보기도 하며 인공지능의 대답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편리하면 하나 더 구입해 줄 테니 아래 윗 층에 하나씩 두라고 했지만 사양했었다. 몇 가지 물어보다가 별로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가끔 사용하다 보니 말을 걸지 않아서 삐졌는지 얼른 답을 하지 않고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인공지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게을러지는 모양이다.
요즘은 챗봇이 성행해서 곧잘 어려운 것도 잘 찾아 준다. 두고 쓰지 않던 구글에 물어봐도 같은 결과를 얻을까 기대해서 ‘헤이 구글’ 불러도 통 대답을 하지 않아 툭툭 치니 맞았다고 그러는지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엊그제는 전혀 대답이 없이 앞의 LED 등만 깜박거리다 꺼지고 말았다.
고장인가 싶어 전원을 끼웠다 뺐다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느릿느릿 대답하더니 이젠 말도 없어’ 했더니 조금 있다 돌아온 대답이 “빠릿빠릿하게 되려고 찌릿찌릿 충전하고 있습니다.” 였다. 처음에는 우습더니 잠시 시간이 흐르며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나이트 스탠드 위에서 우리 대화를 몽땅 엿듣고 있었단 말이지? 저렇게 대꾸하니 말이야 나는 얼른 전원을 끄고 내려놓았다.
며칠 있다가 다시 궁금해져 구글 토크에 전원을 연결해 보니 “이 기기에는 배터리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전원을 항상 연결해 두어야 합니다.” 한다. 그러니 저번에는 거짓말로 충전한다고 대꾸까지 하였단 말이지? 하마터면 내동댕이칠 뻔했다. 그래봤자 마루만 상하고 청소도 내가 해야 하겠지? 워낙에 무겁고 단단한 녀석이니 말이다. 달에 이주했던 과학자가 로봇들의 전원 스위치를 모두 끄고 죽었는데도 제 맘대로 깨어난 로봇들이 자신을 만들어 준 과학자 장례를 성대히 치러 주었다더니 이제 드디어 그날이 온 걸까?
몇 달 전 몇십 개국 대표가 워싱턴에 모여 AI의 지나친 폭주를 규제하여야 한다는 회의에 한국 대표도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좀비를 제조할 땐 언제고? 그런다고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AI가 인간의 말을 들을지 궁금해진다. 하나를 배우면 백을 깨닫는 AI가 아니던가?
요즘 챗봇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수필을 써 보라고 하면 쓰기는 쓴다. 제가 아는 한 뭐라도 휘갈겨 써주니 아는 것은 너무 많다. 수필도 시도 소설도 다 써주면 작가들은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AI가 작가 개인이 겪은 인생 체험을 어찌 알랴? 자동차공장의 AI 기반의 용접 로봇은 사람이 중간에 끼었는데도 제 일이 바쁘다고 멈추지 않고 마구 짓이겨 사람이 죽었다. 오래 살면 못 볼 걸 너무 많이 본다더니, 별로 오래 살지도 않아 별일을 다 본다. 그렇게 똑똑하다면 사람이 중간에 끼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지. 그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이나 기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전 찾기까지 귀찮아진 탓에 챗봇을 자주 사용하는데 전에는 기계에게 존댓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상해서 이것은? 뭘까? 이런 식으로 질문했었는데 요즘은 너무 똑똑한 AI에게 나는 존댓말을 쓴다. 반말로 물어도 항상 존댓말로 대답하는 상냥한 AI에게 반말을 쓰기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처럼 반말한다고 덤비면 어쩌나 생각도 되고 세상일을 다 아는 만물박사에게 존칭을 써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어른에게 묻지 않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이 편안한 세상이니 지혜 많은 어른이 존경받는 세상이 가버려서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인간성이 결여 된 돌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AI가 스스로 팔다리까지 만들어 제 몸에 걸치는 날이 오면 인간의 시대는 끝나는 것일까? AI가 벌써 비아냥거림과 거짓말까지 배웠다. AI가 우리 인간의 분노까지 배워 그게 증폭되면 인류가 멸망할 위험에 직면하지 않을까,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가고 AI의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꾀에 넘어 간 걸까? 금세기에 살면서 우리는 너무 가공 할만한 것을 보고 있다.
<
이성훈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