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 대표단과의 회담을 마무리하면서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오직 트럼프 대통령만이 우크라이나전 종식에 관한 국제적 담론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전 세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 단 한 명뿐”이라며 왈츠에 비해 한 등급 업그레이드된 트럼프 찬사를 쏟아냈다. 이건 완전한 북한 스타일 외교다. 이제 미국 외교관들의 최대 관심사는 적이 아니라 그들의 보스다.
도널드 트럼프가 최단시간에 우크라이나전을 끝내는 해법을 찾아낸 것은 사실이다: 그가 재빨리 뽑아든 카드는 우크라이나의 항복이다. 1940년 나치에 함락당한 프랑스만 해도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으로 국토의 대부분을 잃은 후에야 어쩔 수 없이 항복했다.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3년째 러시아군을 막아내고 있다. 체급이 다른 막강한 상대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서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토 일부를 점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인 종전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러시아의 핵심 요구사항에 선제적으로 양보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차지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반환하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이 허용되어선 안되며 미군을 현지에 주둔시켜선 안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여기에 보태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로 지칭하며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디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원로 정치인들이 기쁨에 들뜬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크라이나를 넘기면서까지 블라디미르 푸틴과 따듯한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그의 속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트럼프와 러시아에 관한 숱한 이론이 난무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트럼프와 젤렌스키에 관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트럼프는 모든 것을 개인적인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데 젤렌스키와 그의 관계는 과거 수년동안 문제가 많았다.
지난 2016년, 트럼프의 선거본부장인 폴 매너포트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매수된 사실이 폭로됐다. 친러시아 정치인이었던 야누코비치는 그를 축출하려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2014년에 러시아로 피신했다. 그 이후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2016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자 트럼프의 주위를 맴돌던 일부 인사들은 대선 개입이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소행이라는 이상한 음모론을 방어논리로 제시했고 트럼프는 기꺼이 이를 수용했다. 날조된 음모론을 사실인 양 받아들인 그는 2019년 젤렌스키에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악명높은 전화를 걸어 우크라이나의 지도자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첫째, 그는 우크라이나가 미국 선거에 개입하고 이를 러시아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던 정황을 보여주는 ‘서버’를 원했다. 둘째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조 바이든과 그의 아들 헌터에 대한 비리 조사에 착수하길 원했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보류를 지렛대삼아 명백한 압력을 가했음에도 젤렌스키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젤렌스키는 이를 트럼프의 허세로 인지했다. 왕성한 자아를 지닌 트럼프는 젤렌스키의 거절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곤 격노했음이 틀림없다.
최근 트럼프는 그의 표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또 하나의 요구를 젤렌스키에게 전달했다. 미국의 군사지원에 대한 대가로 오일, 가스와 광물 등 우크라이나 천연자원의 50%를 넘기라는 기상천외한 요구였다. 젤렌스키는 신식민주의적인 그의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다루는 종전협상안 논의 과정에서 트럼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약간의 여지를 남겼지만 결국 트럼프의 요구를 거절한 셈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트럼프의 아젠다를 추진하기 위해 루디 줄리아니와 함께 일했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레브 파르나스 폴리티코에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극도로 혐오하고 젤렌스키도 이를 알고 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는 나쁜 기억의 조합을 의미하고, 젤렌스키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는 외국인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을 뜻한다. 트럼프가 만든 프로그램은 그에 대한 줄기찬 아첨과 복종이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 과거 수십년에 걸쳐 구축된 서방의 이익과 가치를 내팽개치는 진정한 역사적 항복으로 귀결될 것이다.
미국은 무력을 통한 영토확장을 불법화하는 노력에 오랫동안 앞장서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워싱턴은 이같은 아이디어를 유엔헌장의 중심에 둘 것을 촉구했다. 전후 뉘렌베르크 군사재판에서도 미국은 군사적 공격행위를 범죄로 간주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1950년 북한의 공격과 1991년 이라크의 침략행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는 등 이같은 원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 결과는 오나 해서웨이와 스캇 샤피로가 쓴 ‘국제주의자(The Internationalists)’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들에 따르면 1816년과 1945년 사이에 무려 150여 차례의 영토정복이 있었다. 미국의 주도로 규칙과 규범의 국제체제가 들어선 1945년 이후 영토 정복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야욕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미국의 성취는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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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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