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보울 주일이다. 남편이 풋볼을 좋아해서 애들이 어려서 대학갈 때까지 수퍼보울하는 날은 피자나 닭다리요리를 준비해 놓고 대형TV앞에서 가끔 친구들도 초대해서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지르며 응원했던 기억이 새롭다. 쿼터백이 몇 십야드를 던져서 그들이 계획한 리시버가 멀리 뛰어가서 그 볼을 받아내는 멋진 플레이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고 신이 나서 눈을 반짝이며 다음 플레이를 기대했고 몇 분 남지않은 시간에 좋아하는 팀이 인터셉트당해서 반전이 되거나 펌블로 볼을 상대에게 빼앗기는 상황에선 가슴이 콩닥콩닥 땀을 쥐게했다.
풋볼은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조금 윤곽이 잡혀갈 때 애들은 떠나갔고 빈 둥지가 된지 오래되었어도 해마다 2월이면 수퍼보울이 기다려진다.
경기 시작 전에 경건하게 미국국가가 울려퍼지면 애국심이 강물처럼 마음에 흐르고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희생자가 생겨서 그들에게 묵념을 보낼 때엔 진한 감동과 전율이 몰려 온다. 300파운드가 넘는 거구들이 헬멧을 눌러쓰고 위풍당당하게 입장할 때는 옛 로마 병사들이 되살아난 것같은 체취가 느껴지고 스타디움은 10만 관중들의 함성으로 뒤덮힌 가운데 동전 토스로 경기는 시작된다. 올해 수퍼보울은 LIX(59)회를 맞았다. 로마숫자 표기는 강인함을 풍긴다. 팀 선수들의 유니폼 색깔을 좇아 같은 색옷으로 두 팀이 쫙 갈라져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관중석의 응원팀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수퍼보울에 저당잡힌 것이 다. 팀의 유니폼 색깔로 칠한 얼굴들, 그리고 춤추는 치어리더들의 옷이 석양에 번쩍이면서 세상은 빛이 나고 드럼치는 소리, 호른 소리에 깃발은 춤을 추고 있다.
2월 두번째 선데이에 열리는 수퍼보울은 하나님이 주일아침 예배를 받고 챔피언을 점지해 주십사하고 선데이를 택했나? ‘수퍼선데이’라고 하는 의미를 새삼 생각한다. 세계 최대규모의 단일경기 이벤트인 수퍼보울의 원년은 1967년 USC 대학 풋볼팀의 구장인 LA 메모리얼 콜로시움에서 열렸다. 그 경기장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본따서 지었는데 그 이유는 구단주가 “로마의 콜로시움을 보수해서 관중을 수용할 수만 있다면 프로 풋볼(NFL) 개막전을 그 곳에서 치르고 싶다” 라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풋볼선수들은 치열하게 싸우며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미식축구의 근본정신인 나를 버리고 팀을 우선시하는 초기 미국의 개척정신이 들어있다. 화려하게 연출한 의상과 무대, 세트디자인으로 장식한 경기중간의 하프타임 쇼는 내노라하는 아티스트들이 나와 공연을 한다. 미국 인구의 1/3이상이 관람한다는 수퍼보울 광고는 30초당 50만-70만달러라는엄청난 광고료에도 광고주들이 경쟁적으로 광고를 하려 한다는게 그 효과로 볼 때 당연할 것같다.
터치다운을 하고나면 그곳에 깃대를 꽂는 것처럼 공을 박고 그 자리에서 잠깐 춤추며 기뻐하는 선수들에게서 풋볼의 의미와 미국인의 여유를 느낀다. 격렬하게 부딪치고 싸우다가도 상대방을 넘어뜨렸을 때는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는 걸 보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매우 거칠고 난폭한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온정이 흐른다.
이긴 팀의 고향에선 온 거리가 환영물결로 선수들을 북돋아주며 축하하는 광경에서도 소속감, 형제애, 미국인들을 하나로 묶어 근저(根底)파워를 심어주는 웅장한 게임이란 생각이 든다. 수퍼보울은 단순한 운동경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문화의 여러가지 특징을 보이는 문화코드이다.
올해 수퍼보울LIX(59) 은 루이지애나에서 개최되었고 응원했던 팀인 필라델피아 이글스팀이 처음부터 박력있게 챔피언의 기운을 풍기며 스코어를 압도해 나갔기에 재미있었지만 켄사스 시티 치프스팀도 열심히 뛰었다. 워낙 점수차이가 크니까 끝나기 몇 분전에 축하 퍼포먼스로 얼음 세례를 받으면서도 기뻐하던 이글스 감독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또 내년 2월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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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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