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소(些少)해 보이는 것이 많다. 어떤 것이 적거나 작아서 보잘것 없거나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사소해 보이는 먼지와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듯, 세상은 사소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찰나의 시간들이 모여 우리 인생과 장구한 역사를 이룬다. 사소함이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무엇을 혹은 누구를 작고 사소해 보인다는 이유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작은 틈새 하나 때문에 배가 침몰한다는 소극침주(小隙沈舟)가 이를 교훈한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면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음을 일깨우는 말이다. 작은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사소가 곧 막중(莫重)이요 중대(重大)다. 사소함의 이어짐과 얽힘이 우리의 삶과 우주만물을 이룬다. 양자(量子)역학에서 말하는 우주이해다. 사소는 결코 중요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뜻 보아 사소해 보이는 빨대(straw) 문제도 그러하다.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종이 빨대는 효과가 없다.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면서‘플라스틱 빨대 구매 장려’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미국은 빨대보다 더 큰 환경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데, 다들 빨대 같은 작은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빨대 문제를 작다고 본 것이다. 얼핏 그럴 듯하지만 이는 환경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플라스틱 빨대 장려 정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기 재임(2017-2021) 당시에도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권장한 바 있다. 2019년에는 트럼프(TRUMP) 로고를 새긴 플라스틱 빨대를 판매하여 일주일 만에 46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는 트럼프의 구호가 적힌‘플라스틱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Make Plastic Straw Great Again) 깃발이 팔리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와 비교하면, 분명 종이 빨대는 빨리 젖고 흐물해져 내구성이 적다. 사용자 친화적인 면에서 보면 종이 빨대는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의 편리성에 근거한 소비자 친화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빨대를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 동물들의 안전, 환경오염과 탄소배출 정도, 인류의 미래 등을 고려하여 빨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엄격히 제한한 유럽국가들의 인간의 불편함을 감수한 생명친화적 결정이 돋보인다.
플라스틱 빨대가 싸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버려진 플라스틱 빨대는 떠돌다가 거북이나 동물들에게 피해를 준다. 수백년 동안 땅과 바다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생태계 오염은 물론 우리의 몸에 미세 플라스틱을 쌓이게 한다. 종이 빨대는 불편하기는 해도, 순환림(循環林)의 나무로 만들기에 플라스틱 빨대보다 탄소배출이 적고 분해도 빨라 자연의 동물들에게 덜 해를 준다.
종이 빨대냐 플라스틱 빨대냐? 그까짓 빨대 아무거면 어때? 그렇지 않다. 빨대 문제가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가 어떤 빨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는 물론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의 동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사뭇 다르다. 빨대의 문제는 편리성이나 실용성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빨대 문제 해결 방식은 인류의 건강과 자연의 동물들의 삶 그리고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관을 담고 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빨대 문제를 진지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전지구적 환경오염과 기후재앙을 차근하고 바르게 해결해 갈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이 되기 때문이다. <도덕경>에 ‘세상의 큰 일은(天下大事)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일어난다(必作於細)’는 말이 있다. 예수께서도 지극히 작은 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라야 큰 일도 맡아 해 낼 수 있다 말씀한다.(루가16:10) 작음 곧 사소의 중요함을 뜻한다.
종이 빨대냐 플라스틱 빨대냐? 비록 작고 사소해 보일지라도 진지한 환경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빨대 하나에 담긴 의미와 영향은 적지 않다. 빨대 선택 하나에도 마음을 쏟는‘작고 따듯한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인류의 미래, 오늘 우리의 사소하리만치 ‘작은 마음, 작은 실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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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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