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 횡단 동맹 균열 위기… ‘미국 못 믿는다’ 위기 커져
▶ 유럽, 방위비 증대 강력 추진…프랑스 핵무기 공유 방안도 거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후 80년간 굳건하게 유지돼 온 대서양 횡단 동맹에 균열이 발생하며 그간 미국에 안보를 상당 부분 의존해 온 유럽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유럽을 배제하고 적대국인 러시아와 밀착하는 등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유럽에서는 "미국은 더는 동맹이 아니다"라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미국 도움 없이도 스스로 방어할 힘을 키워야 한다는 자강론이 그 어느 때보다 확산하고 있다.
◇ "빨리 무기 사라"…방위비 늘리는 유럽
유럽연합(EU)은 자강의 핵심인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일명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내놨다.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진하기 위해 최소 8천억 유로(약 1천229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한다는 게 골자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구체적 방안으로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국방 부문에 대한 공공자금을 적극 동원할 수 있도록 EU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국가별 예외조항을 발동하자고 제안했다.
재정 준칙에 따라 회원국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 60% 이하로 유지해야 하며 초과 시 EU 차원의 제재가 부과될 수 있지만 국방 부문은 예외로 삼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현 집행부 남은 임기인 4년간 연간 재정적자 비율을 기존 GDP의 3%에 더해 최대 1.5%포인트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회원국이 평균적으로 국방비를 GDP의 1.5%포인트 인상한다면 4년간 EU 전체적으로 6천500억 유로(약 998조원) 상당의 국방비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EU 공동예산을 직접 활용하는 방안도 공개됐다.
집행위는 EU 예산 여유분 1천500억 유로(약 230조원)를 담보로 회원국에 방공체계·미사일·드론 등 각종 무기 공동조달을 위한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겠다는 복안이다. 공동예산을 담보로 하는 만큼 '유럽산 우선'을 명시할 가능성이 있다.
EU 차원뿐 아니라 유럽 각국 역시 앞다투어 국방비 증대 계획을 내놓고 있다.
유럽 자강론을 오래전부터 주장한 프랑스는 현재 505억 유로(약 78조원) 수준인 국방 예산을 2030년까지 연간 680억 유로(약 106조원)로 확대한다는 게 원래 목표였으나 최근의 국제 정세 변화로 목표치를 상향 조정할 필요를 검토하고 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장관은 6일(현지시간)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국방력 증대를 가속해야 한다며 "우리군이 다양한 임무 수행에 적합한 수준의 체력을 가지려면 연 900억 유로(약 140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새 정부 구성을 논의 중인 독일 정치권도 군비 확충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1천조원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특별예산 편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수당인 기독민주당(CDU) 내에선 2011년 폐지한 징병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영국 역시 현재 GDP의 2.3%인 국방비 지출을 2027년까지 2.5%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2027년부터 연간 134억파운드(24조3천억원)씩 국방 지출이 늘어난다. 영국 정부는 필요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해외 원조 예산을 2027년 GDP의 0.5%에서 0.3%로 삭감할 예정이다.
북유럽 덴마크 역시 대대적인 재무장을 예고하며 올해와 내년 국방비를 500억 크로네(약 10조원)를 추가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국방비를 10년간 총 1천900억 크로네(약 38조원) 증액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특히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국방장관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무기를) 사고, 사고, 또 사라"라며 "최상의 무기를 구매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사야 한다. 원하는 무기 구매가 너무 오래 걸리면 더 신속히 인도될 수 있는 다른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프랑스 '핵 우산론' 부상…내부선 핵 공유 반대도
유럽에선 국방비 지출 외에 자체 핵 억지력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유럽은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틀 안에서 사실상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았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현재 나토의 유럽 5개 회원국(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내 6개 나토 기지엔 약 100기의 미국 핵무기가 보관돼 있다.
앞서 독일의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미국의 핵 보호 없이도 유럽이 스스로 방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며 "유럽의 두 강대국인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제안에 오래전부터 유럽을 위한 '프랑스 핵우산론'을 주장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동맹국들과 기꺼이 논의하겠다며 환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5일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이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맞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유럽 일각에서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5일 열린 EU 정상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며 "핵우산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와는 달리 프랑스 국내 정치권에서는 동맹에까지 핵 억지력을 확대하는 데에 부정적인 의견이 상당하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프랑스의 핵 억지력은 프랑스의 핵 억지력으로 유지돼야 한다"며 "핵 억지력을 공유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같은 당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 역시 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핵무기 버튼을 유럽 국가들과 공유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것은 국가적 배신행위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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