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이 영글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3월 8일, 워싱턴 통합 한국학교를 통해 워싱턴 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속에 흑백 사진으로만 존재했던 이 건물은 역사를 잊지 않는 대한민국의 품으로 2019년 다시 돌아왔습니다.
1888년, 당시 조선은 미국에서의 첫 번째 공사관을 워싱턴 D.C.의 1510 13th Street NW에 설립했습니다. 이는 박정양 초대 주미 공사가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과 교섭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청나라가 대한제국의 외교 활동을 제한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의 외교적 독립을 지지했고, 대한제국 관료들은 끝까지 공사관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이후 공사관은 15 Iowa Circle(13가의 당시 이름)로 이전되었으며, 고종 황제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공사관은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으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던 당시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강제 편입하면서 한국의 외교권은 박탈되었고, 1906년 공사관은 공식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후, 이 건물 역시 일본의 손에 넘어갔고, 결국 미국인에게 단돈 5달러에 팔려버리는 비극을 겪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 건물은 개인 주택,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 공간, 노동조합 회관 등으로 사용되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7년 티모시 & 로레타 젠킨스 부부가 이 건물을 매입하였고, 이후 오랜 노력 끝에 2012년, 대한민국 정부와 문화재청, 그리고 한인 동포들의 지원에 힘입어 350만 달러로 재구입 과정을 통해 마침내 우리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많은 노력 끝에 그 건물은 원래의 위엄과 역사적 가치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듯 고고한 공사관 내부를 걸으며, 알 수 없이 처연하고 또 의연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벽지의 색조차도 명확히 남아 있지 않아, 흑백사진과 한 줄의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초록빛 벽. 외국 사절단을 맞이하던 1층의 빅토리아 양식 객당과 식당, 2층의 집무실이 있던 공간에 전시된 전통 갓, 한국식 붓글씨를 쓰던 필묵, 그리고 공간 하나하나의 기록을 남겨 복원해 낸 세심한 노력. 한국에서는 집 밖 먼 곳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화장실이 이곳에서는 실내에 위치해 있는 점까지-모든 것이 당시 한국 외교관들의 조선과 미국의 문화의 절충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서서 나는 100년 전 이 건물을 걸었던 초대 한국 외교관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익숙지 않은 언어로 교섭하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조국을 위해 외교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사람들. 그들의 부인들 또한 낯선 땅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인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에게 이곳은 참으로 멀고 낯선 땅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겐 한국 식료품점이 있어 떡과 김치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들은 조국의 맛과 향조차 재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풍전등화의 조국을 위해 보이지 않는, 하지만 찾아야만 했던 애국의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100여 년 전, 이곳을 거닐던 사람들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대한제국을 지키고자 했던 외교관들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옛 대한제국 공사관은 단순한 복원된 역사적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라질 뻔했던 대한제국의 존재를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의 저항과 희망, 그리고 한국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한때 잃어버린 이곳이 다시 되찾아진 순간을 바라보며, 이것이 단순한 건물이 아닌 한국의 역사, 존엄, 그리고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봄기운이 피어나는 늦은 오후 다시 태어난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을 떠나면서 많은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이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피어난 것이라 깨달으며 나도 또한 그런 모습으로 후손를 생각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정하니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 소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