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8일, 백악관에서 있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충돌은 외교적 결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아무런 카드도 손에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장면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 그리고 정치와 역사가 힘의 논리에 의해 쓰여 왔음 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젊은 밴스 부통령은 “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할 줄 모르느냐?" 라며 젤렌스키를 강하게 몰아세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또한, 극우 성향의 Real America’s Voice 방송 기자인 브라이언 그랜은 “왜 양복을 안 입나? 양복이 없나? 왜 그런 복장을 하고 다니냐?”라며 조롱 섞인 언사로 일국의 대통령을 깎아 내렸다. 국가 정상 간 기자회견에서 부통령이 끼어드는 경우도 드물지만, 언론인이 이렇게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정부 각료들의 표정과 태도는 마치 고등학생 일진들이나 뒷골목 주먹패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회의가 열린 오벌 오피스(Oval Office)는 미국 민주주의와 공화정치의 상징이자,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위상을 대표하는 장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떼어내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었다. 소통과 여유, 그리고 은은한 미소로 반대 진영까지 포용하며 존경을 받았던 레이건 대통령.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는 본인이 존경한다며 걸어둔 레이건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만약 한국에서 전시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우를 받을지 심히 우려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대면 회담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전쟁 중 미군 36,516명이 희생되었지만, 두 정상은 직접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서신 교환과 외교 채널을 통해 긴밀히 소통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차례 미군의 희생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한을 보냈다. 또한, 주미대사 장면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청했고, 결국 이를 성사시켰다.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이자 유일한 군사 동맹 조약으로, 한미동맹의 법적·국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조약은 한국에게는 생명줄과 같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조약이었다. 미국에서 반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체결에 성공했고, 이제는 72주년을 맞이하며 대한민국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전시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성공시킨 공로는 분명히 인정해야한다. 그는 조지 워싱턴 대학 학사(1903), 하버드 대학 석사(1905)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어느 미 육사 장성들보다 높은 학위와 유창한 영어 그리고 논리적인 대화로 미 정계 지도층으로 부터 인정을 받았던 인물이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던 한국의 대통령은 어떻게 공산주의 국가들(북한, 중국, 소련)의 무력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그것도 단 시간 내에 미국과 유엔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나토와 유엔이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는 현 전시 상황과 대조되며 이승만 대통령의 놀라운 지도력과 외교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희토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같이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굴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면, 우리 한인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 듯 아팠을까?
우리가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에 이민을 결심 했던 본질적인 이유는 단순한 부국(富國) 강국(强國)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기독교적 사상과 자유 민주주의 사상 때문이 아니었던가? 힘의 논리로 동맹국을 깎아 내린다고 해서 미국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미국을 더욱 강국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자국민 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왜 양복을 안 입느냐"고 몰아세우는 철면피 같은 언론인이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 “내 양복을 줄 테니 입어라"라고 조롱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거,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며 여유와 포용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가치들은 모두 사라졌단 말인가?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제프 안 미국-한국 연구원 원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