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이 만난 사람’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 전세계 최초 주문시점서 차입 확인 가능, 공매도 재개 부작용 없을것
▶ 밸류업 주가만 봐선 안돼…정보 비대칭성 해소해 기업가치 제고 효과
▶ 좀비기업 퇴출 없인 시장 신뢰 상실…구조개편 연구결과 하반기 공개
“한국거래소가 구축한 공매도 중앙점검시스템(NSDS)은 전 세계 최초로 공매도를 주문한 시점에서 차입이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불법 공매도(무차입 공매도)를 적출할 수 있습니다. 공매도 제도를 운영하는 홍콩 등 해외 국가에서도 관심이 높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들 국가에 시스템을 전파할 생각입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1일 전면 재개되는 공매도를 앞두고 구축한 NSDS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해야 공매도에 따른 국내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며 “무차입 공매도인지를 판단하는 핵심은 주문을 낼 때 차입이 이뤄졌는지 여부인데 NSDS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NSDS는 잔액 관리 시스템과 연계해 기관투자가가 보고한 잔액 정보를 모든 매매 내역과 비교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정부는 2023년 11월 공매도를 전면 중단했다. 한국은 자본시장법상 차입 공매도를 제외한 모든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데 기관투자가의 무차입 공매도 행위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코스콤과 함께 공매도 거래 내역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NSDS를 개발했고 1년 5개월 만에 공매도 전면 재개를 앞두고 있다.
정 이사장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개인투자자들이 많은데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점검하면서 매일 NSDS를 가동하면 무차입 공매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해외 거래소에서도 관심이 높아 이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안착된 뒤 시스템을 지원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체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약 6개월 정도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정 이사장은 공매도 재개로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 유입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한국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것을 두고 외국인투자가들과 해외 거래소는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다”면서 “공매도는 시장이 과도하게 오버슈팅(단기 급등)되는 것을 막아주는 신속한 가격 발견 기능이 있기 때문에 무차입 공매도가 아니라면 공매도 재개로 인한 부작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취임 2년 차를 맞은 정 이사장은 올해 밸류업 프로그램 활성화와 증시 진입·퇴출 체계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코스피지수는 제자리여서 시장의 평가는 아직 엇갈리고 있다. 정 이사장은 “많은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소각 동참에도 단순히 주가 흐름만 보면 밸류업 프로그램을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꽤 성공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서 “잠재적인 펀더멘털(기초 체력) 대비 주가가 낮게 평가된 기업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 줘 투자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게 프로그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은행주의 주가 상승을 예로 들며 “은행 산업의 성장성이나 잠재력이 높아진 결과라기보다는 주주 친화적인 경영에 따른 것”이라며 “주주 보호가 되지 않으면 (상장기업은)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기업들의 밸류업 공시를 강제할 순 없다는 것이 정 이사장의 판단이다. 하나둘 참여 기업들이 많아지게 되면 기업 스스로 부담을 느끼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세제 혜택 같은 유인책을 제시해 확산시키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정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한국 산업과 기업의 적극적인 체질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국내 증시는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근본적인 기업의 성장은 경영진의 혁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주가는 미래 현금 흐름에 대한 현재 가치로 앞으로 이 기업이 미래에 돈을 얼마나 벌 것이냐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면서 “미국은 제조업에서 벗어나 거대 기술기업 7곳(매그니피센트7) 위주로 새로운 사업을 일궈내면서 미국 다우지수는 1990년 3000대에서 현재 4만 대까지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처럼 산업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34년 후에도 코스피는 여전히 3300 선을 깨지 못할 수 있다며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든 게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다. 정 이사장은 “최근 6만 원대로 주가가 회복하긴 했지만 박스권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TV 등 제조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제는 중국이 휩쓰는 범용 제조업보다는 선진국이 아니면 하기 힘든 신약 등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인공지능(AI)과 로봇 분야도 서둘러 미국·일본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좀비기업’의 증시 퇴출을 위한 의지도 거듭 내비쳤다. 정 이사장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4분의 1 수준인데 상장회사는 미국의 2분의 1”이라며 “코스피 상장사를 보면 삼성전자처럼 시가총액이 365조 원이 넘는 곳도 있지만 수천억 원대인 회사도 있어 코스피든 코스닥이든 시장별 구조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현재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기업 수 2642곳은 미국과 시총을 비교했을 때 과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좀비기업을 빨리 퇴출시키지 않으면 불공정거래가 생길 수밖에 없고 시장 신뢰성도 사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위해 거래소는 금융 당국 및 연구기관과 주식시장 구조 개편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올 하반기쯤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난해 일본 증시에서도 상장 기업 수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장기업 수가 줄어든 것은 혁신 기업이 사라진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어 좋은 신호는 아니지만 주식시장에서 진입과 퇴출을 원활히 해 (상장기업 수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 자본시장과 경쟁하려면 시장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 출범에 따라 국내 주식거래 시장이 복수 시장 체제로 전환한 만큼 전산 시스템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달 31일부터 넥스트레이드에서 거래되는 종목이 800종목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전산 오류가 발생하면 투자자의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8일에는 거래소의 시스템 오류로 장중 7분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전 종목 주식 매매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복수 거래소 체제를 맞아 새롭게 도입한 ‘중간가 호가’와 기존 호가 방식인 ‘자전거래방지조건(SMP) 호가’가 충돌한 게 원인이었다. 정 이사장은 “3월 말부터 넥스트레이드에서 거래되는 종목이 대폭 늘어나는데 어떤 시스템에서 코딩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면서 “전산 오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4월 말까지 넥스트레이드와 함께 계속 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상장회사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단서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 이사장은 “대한민국 주식회사 106만 개 중 상장사는 2600개, 소액 투자자가 없는 비상장사는 99만 7400개”라며 “상법을 개정하는 것은 비상장사에도 (소액 투자자 보호가) 적용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담=황정원 마켓시그널부장>
<
정리=윤지영ㆍ강동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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