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시작과 끝은 샴페인이라는 말이 있다. 와인 테이스팅에서 맨 처음 맛보는 와인이 샴페인이고, 와인애호가들이 최종적으로 빠지게 되는 와인도 샴페인이라 해서 나온 말이다.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 때 마셨던 와인, 진실로 샴페인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섬세하고 특별하며 고급스러운 맛을 가진 ‘와인의 왕’이요 최고봉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샴페인이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나온 모든 와인, 샴페인, 주류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 EU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보복관세 전쟁의 결과로, 트럼프가 건 싸움에 유럽이 맞서면서 와인업계와 애호가들만 등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작은 지난 10일 트럼프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12일 유럽연합은 4월1일부터 미국산 버번위스키와 할리 데이빗슨 모터사이클, 4월13일부터는 육류와 농산물, 주류, 가전제품에 50%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트럼프는 “당장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200%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선진 우방국들 사이에 관세가 매일 25%, 50%, 200%까지 곱절씩 뛰는 감정적 대처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차고 한숨만 나온다. 아무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이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4월1일 전에 양보와 타협이 가능할지, 아니면 진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 관세라는 건 관세가 아니라 수입금지라는 말이고, 양국의 관련 산업을 다 죽이는 파괴적 정책이다. 50달러짜리 와인이 갑자기 150달러로 뛰면 누가 사마실 것인가. 관세에 더해 도소매로 넘어가는 유통과정을 지나면서 마크업이 계속 붙기 때문에 훨씬 더 비싸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유럽과 미국의 와인업계는 2주전부터 패닉 상태인데 특히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중심지 에페르네에서는 어디를 가든 대화에서 “200”이란 숫자만 들린다는 것이 현지의 전언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미국에 와인을 수출하는 나라들도 모두 마찬가지이고, 미국 내 와인 수입 및 유통, 도소매업자들과 와인샵, 식당들도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베이 지역에서는 샴페인 사재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심하게는 한 사람이 수십 박스를 구매하는 등 팬데믹 초기의 화장지 사재기 소동을 연상케 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 관세는 샴페인만이 아니라 모든 와인과 주류에 대한 것이지만 샴페인은 대체 불가능한 와인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그만큼 크다. 스파클링 와인은 세계각지에서 생산되지만 샹파뉴에서 나오는 샴페인의 섬세한 맛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이 지역에서는 수백년 동안 수작업의 전통양조법을 고수하면서 고유의 향과 맛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360여개에 달하는 샴페인하우스들은 연간 3억병을 생산하는데(셀라에서 잠자고 있는 와인은 무려 10억병이 넘는다) 그 3분의 1은 가장 크고 유명한 동 페리뇽, 뵈브 클리코, 모에 샹동, 크뤼그, 루이 로데레 등의 것이다. 미국은 이들의 가장 큰 시장으로 2023년에만 2,700만병, 8억8,5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또한 미국은 프랑스뿐 아니라 27개 EU국가에서 나오는 모든 와인과 주류의 20%를 수입하는 가장 큰 시장으로서 연간 49억 달러를 소비한다. 200% 관세 부과는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무역과 시장을 파괴하는 일이고 와인 생산자부터 수출업자, 수입업자, 유통업자, 와인스토어와 식당들 모두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히는 일이다.
최근 와인업계는 그러잖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와인 소비의 주체였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젊은 세대의 주류 취향이 달라지면서 판매가 감소한 탓이다. 또 폭염과 가뭄, 산불 등 기후변화로 포도수확이 전 같지 않은데다 술은 적은 양도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점점 더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 관세 폭탄마저 터진다면 미국과 유럽의 와인 비즈니스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질 것이다.
위기감이 팽배한 프랑스에서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의 회장이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최고부자인 그는 트럼프와 오랜 친분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받아 다녀온 인물이다. 그의 모에 샹동과 헤네시가 생산하는 샴페인과 코냑의 35%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의 물꼬를 트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다.
트럼프의 200% 보복관세는 철회돼야한다.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서 일반시민들의 소소한 기쁨에 재를 뿌리는 일이다. 샴페인을 마실 수 없게 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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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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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때 일제, 미제, 독일제라면 사죽을 못쓰도록 귀했는데 이제는 여기 미국땅에서 외국산이라면 사죽을 못쓰게 생겼구먼.
'미 '국산품애용'에한표!' 실지로 켈리산 올리버유 품질좋고, 즐겨마시는 커피도 미국산좋았다. 강요못하나 기왕이면 '국산품애용' 그러다보면 트통의 통큰 한방 5천불이 후다닥 입금될수도...
난 수도 없이 하나를보면 열을 알수있다는 한 국속담을 야그 했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