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림 그리기를 배우면서부터는 강아지를 곧잘 그렸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강아지를 소원했고 의견 표현을 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는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지만, 그때마다 실망했다. 매년 부모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 역시 어릴 적 간절한 소원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강아지에게 지어줄 이름을 고르면서 강아지와 노는 상상을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면 나를 반겨줄 강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렸을 적에 키우던 강아지가 농약 먹고 죽어버린 기억이 있던 엄마는 강아지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동물을 집에 들이도록 허락한 것도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도 강아지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어떤 강아지를 키울까? 고민하면 행복했다. 인터넷에 “당신에게 맞는 강아지는?” 조사하는 사이트가 뜨면 종종 응답해 보았다. 그런데 조사해 보면 항상 대답은 같았다. “당신의 생활 패턴에 맞는 강아지는 없습니다.” 그래, 혼자 살면서 집에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나의 삶에 강아지를 들여와서 매일 홀로 지내게 할 수는 없었다.
가족이 생겼다. 드디어 강아지를 키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딸아이가 그렇게 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 나는 반대했다. 커리어와 어린 딸. 거기에 덧붙여 강아지를 돌볼 심리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딸아이의 강아지 프로젝트는 매년 2:1 표로 부결되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나는 딸아이 편에 섰다. 이제 조만간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날 딸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나 역시 이제는 강아지를 돌볼 여유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아지 프로젝트는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일 년 동안 강아지 키우기에 대해 딸과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끝까지 반대하는 남편에게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2025년 새해 벽두에 갓 두 달 지난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의 개고생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배변 훈련이었다. 강아지는 저녁 8시에 잠들어서 새벽 3시, 4시에 일어나서 운다. 1시, 2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변을 보게 하면 그 후 1시간마다 배변이다. 배변의 상당수는 집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닦고 치우는 일은 대부분 내 몫이다. 여기저기 핥는 강아지를 위해 청소는 화학약품이 들어간 제품을 거의 쓰지 않는다.
도대체 왜 집안에서 볼일을 보는데?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강아지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상할 것이었다. 우리는 집안에서 배변하면서 강아지에게만 바깥에 나가서 배변하라고 하니까 말이다. 잘못한 일이 아니니까 야단칠 일도 아니었다. 집안에서 배변이 발생해도 화내거나 야단치지는 않는다. 대신 바깥에서 배변하면 장원급제라도 한 듯이 칭찬해 준다.
이제 강아지는 태어난 지 거의 다섯 달이 되어간다. 배변 훈련은 별 일없이 끝났고 알아듣는 명령어도 제법 늘었다. 강아지는 세상이 너무 새롭고 즐겁다. 나까지 덩달아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다.
요즘은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면 뜻이 오가는 것 같다.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개는 인간의 소울메이트라고 한다. 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동반자다. 인간은 죽은 자를 묻음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이 죽은 사람을 묻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네안데르탈인 시대와 유럽 구석기 시대부터였을 것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묻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부터는 죽은 개를 묻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개 무덤은 독일 본에 있는 오버 카셀에서 발견된 1만 4천 년 된 유적이다. 두 마리의 개와 사람 두 명의 무덤이다. 사람만큼 개를 반려견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개를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 반려동물로 키운 것은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 현대 시대의 특징이 아니라 1만년도 더 된 관계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는 문을 열면 집안에서 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나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개 냄새가 역겨웠다. 어떻게 저런 냄새를 풍기면서 다닐 수가 있을까? 의아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가도 사실 개 냄새를 생각하면 고개를 가로저을 때도 많았다. 그런 고약한 냄새가 나한테 나고, 우리 집에서 난다니… 그런데도 괜찮다. 강아지는 이쁘기만 하다. 이것이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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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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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쿡은 사람 가치가 개만도 못하다는걸 알 때가 있곤 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매일 뉴스에서 보게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