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워싱턴발 깜짝 뉴스에 그의 집권이 벌써 꽤 오래 지난 듯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캐나다, 멕시코 등을 문제 삼았고, 이어 가자지구 주민 소개와 개발 구상을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른 나라의 영토 주권을 무시하는 등 기존의 미국 외교와 국제관계에서 보지 못했던 발상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었다. 동영상으로 송출된 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에게 러시아와의 종전 또는 휴전에 동의할 것을 강하게 압박했다. 종전 이후 안전보장 제공에 관한 미국의 확답을 원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신은 카드가 없다”는 모욕적 말을 들었다. 약소국 지도자는 설전 끝에 거의 쫓겨나듯 백악관을 나와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접근이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크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은 미국 동맹국에 큰 충격과 함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나토에서 차지하던 역할의 비중을 대폭 줄이겠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여러 유럽 국가에 최대 위협으로 인식되는 러시아와의 협조 기조도 나타내고 있다. 유럽에서는 자체 군사력 강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계속되었던 노선을 뒤집고 본격적 재무장의 길에 들어설 전망도 커졌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국에 어떤 도전을 제기하는가?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취소하고,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의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 한반도는 트럼프가 몰고 온 폭풍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은 듯하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고 인식하고 조기 종식을 최선결 과제로 삼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가장 중요한 안보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유럽이나 중동 지역에의 개입을 끝내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고자 한다.
한편, 러·우 전쟁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에도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고 대규모 전투 병력까지 파병함으로써 복잡하게 돌아가는 최근의 지정학적 게임에 나름의 지분을 갖는 플레이어로 참여하게 되었다. 종전 협상이 일부 진전되는 가운데,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세르게이 쇼이구가 평양을 방문한 사실도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러•우 전쟁이 끝나게 되면 러시아로서는 북한의 군사적 지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며, 북한은 러시아를 붙잡고 끼어든 게임판에서 다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바로 그런 상태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여러 번 나타냈다. 그는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였다고 말했으며, 북한을 핵 국가(nuclear state)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하다고 간주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또한 시사하며, 앞으로의 미·북 협상은 군축 협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풀이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북한의 핵 군축 협상 전망을 반길 수만은 없다. 군축을 통한 북핵 위협의 경감이 나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핵을 보유한 북한에 더해서 만약 트럼프가 유럽과의 동맹에 그랬듯이 한국에 대한 동맹 책임을 방기할 가능성이 커진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미동맹과 동맹 파트너로서의 한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높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려는 미국의 의도도 고려한다면 높은 가능성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안보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 적극적 대미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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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윤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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