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포스트 특약… 한국 해녀 유전학
▶ 잠수 시 혈압 상승 억제하는 유전자 타고나
▶ 뇌졸중·고혈압 관련 질환 약물 개발에 도움
▶ 차가운 물 내성 강하게 하는 유전자 변이도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만성 질환 중 하나를 해결할 열쇠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차가운 바다, 그리고 수 세대 동안 18미터 깊이까지 잠수해 해산물을 채집해 온 제주 여성들로부터 나올지도 모른다. 이들은 오직 타고난 신체와 훈련만으로 물속에서 생존해 왔다. 이 여성들은 ‘해녀’로 알려져 있으며, 젊었을 때는 임신 중에도 잠수를 지속했고, 출산 후 며칠 만에 다시 미역과 전복 등 해산물 채취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전통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오늘날 섭씨 약 10도의 물속에서 잠수하는 해녀들 대부분은 60대에서 80대 여성들이다.
최근 국제 연구팀은 자연 선택이 작용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과학 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한 유전자 변이가 잠수 시 혈압 상승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전적 적응을 이해하면, 이론적으로는 뇌졸중이나 혈압 관련 질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잠수를 하면 산소가 줄어들면서 혈관이 주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복잡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연구를 주도한 유타대학 생의학정보학 조교수 멜리사 일라르도는 설명했다.
일라르도 교수는 “이건 단기적인 이득과 장기적인 위험 사이의 균형 문제다. 잠수 시 생명을 지키는 반응이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진화는 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숨을 참는 동안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잠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두 가지 형태의 적응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수세기에 걸쳐 제주 사람 전체에게 유전된 것으로, 물속에 들어갔을 때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돕는다. 이 유전자는 또한 임신 중인 해녀가 임신중독증 같은 위험한 질환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 적응은 해녀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훈련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잠수 시 심박수가 느려지는 반응이 나타난다.
일라르도 교수는 “보통은 심장이 빨리 뛸수록 더 많은 산소가 세포에 공급되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만, 산소 공급이 중단된 상황에서는 그 반응을 느리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확정된 바는 아니지만, 해녀의 잠수 역사와 유전적 적응이 제주 지역의 낮은 뇌졸중 사망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 제주 지역의 뇌졸중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24명으로, 미국의 약 37명보다 낮다. 해녀 외에도 과학자들은 인도네시아의 바자우 잠수족도 연구해왔다.
바자우족은 더 큰 지라를 갖고 있어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진화를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티베트인은 산소가 적은 고산지대에 적응한 유전적 변이를 보인다.
■차가운 바다, 나이 든 몸작지만 독특한 특성을 지닌 집단을 연구한 결과는 다양한 의학적 치료 개발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LDL(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PCSK9 억제제는 유전적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지닌 프랑스 가족을 연구하면서 발견되었다. 이 질환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0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일라르도 교수는 왜 제주 해녀가 모두 여성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시점에서 남녀가 함께 잠수하던 것이 여성만 잠수하는 형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남녀 모두 잠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해녀 연구 과정에서 일라르도 교수는 제주도를 세 차례 방문했으며, 해녀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온 서울대 이주영 박사와 협력했다.
일라르도 교수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평균 연령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멈추지 않은 배에서 87세 여성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해녀들이 면 잠수복만 입고 찬물에 들어갔지만, 1980년대부터는 잠수복을 입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세 집단(해녀, 비해녀 제주 여성, 육지 여성) 각각 약 30명씩을 비교했다. 이들은 혈압과 심박수 등 생리적 특성을 측정받고, DNA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유전적 차이를 확인했다.
모의 잠수 실험에서 제주 여성과 육지 여성의 심박수는 분당 약 20회 감소했으나, 평생 잠수한 해녀들은 이보다 두 배 가까이 심박수가 느려졌다. 실험은 실제 바다 대신 찬물 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숨을 참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반응은 실제 잠수와 유사한 생리 반응을 유도한다. 이는 훈련받지 않은 고령 여성이 바다에 들어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제주 사람 전체가 공유하는 유전자 변이는 물속에서의 혈압 반응을 유도하지만, 그 작용 방식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변이는 혈관 염증에 관여하는 수용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운영하는 ‘올 오브 어스(All of Us)’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 유전자를 가진 유럽계 사람들도 조사했고, 이들 역시 유사한 혈압 반응을 보였지만, 정도는 약했다.
■유전적 적응, 극한 환경, 만성 질환연구진은 이 유전자 변이가 약 1,200년 전 자연 선택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을 것이라 본다. 이들은 이런 과정을 상상해 본다:
오래전 두 명의 임신한 제주 여성이 잠수를 했다. 그중 한 명은 보호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없었다.
유전자가 없는 여성은 잠수로 인해 임신중독증에 걸려 사망했고, 아이도 잃었다. 그러나 유전자를 가진 여성과 아이는 생존했다. 이런 일이 몇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 점점 더 많은 제주 아이들이 해당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애리조나주립대 진화학 교수 벤 트럼블은 “일라르도 박사는 특정 문제를 해결한 집단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자연 선택이 특정 집단의 잠수 능력을 향상시켰다”고 평했다. UC 샌디에고 의대의 테이텀 사이먼슨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전적 적응과 훈련이 극한 환경에서 혈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혈압 측정의 어려움도 지적했다. 혈압은 그 순간의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연구진은 다양한 시간대에 여러 번 측정하여 이를 보완했다. 일라르도 교수는 호흡 참는 시간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별도의 연구를 위해 보류 중이라 했다. 하지만 해녀들과의 대화에 따르면, 젊었을 때는 보통 2~3분간 숨을 참았다고 한다. 성게는 얕은 바다에 살기 때문에, 이를 채취할 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해녀들은 차가운 물에 대한 높은 내성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 또 다른 유전자 변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일라르도는 말했다. 연구진은 ‘사르코글리칸 제타(sarcoglycan zeta)’ 유전자에서 변이를 확인했는데, 이 유전자는 통증과 냉기에 대한 내성과 관련된 테스트에서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테스트는 참가자가 몇 분간 얼음물에 손을 담그는 방식이다.
트럼블은 “심혈관 질환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병을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무실에 앉아 있는 현대인이 아닌 활동적인 집단을 연구하면, 자연 선택이 인간의 생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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