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전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전쟁에 우리의 모든 관심이 쏠린 가운데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의회는 이에 못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예산안을 준비중이다. 초당파 기구인 피터 G. 페터슨 재단에 따르면 의원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2017년도 감세조치를 갱신하고, 새로운 감세안을 시행하면서도 지출을 축소하지 않는다면 향후 10년에 걸쳐 9조 달러의 추가 부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 도달하면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적자 비중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물론 앞으로 10년간 팬데믹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나온 전망치다. 예산안 준비와 동시에 워싱턴은 거의 모든 나라의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글로벌 경제에 퍼펙트 스톰을 초래할 완벽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저명한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는 바로 이 점을 우려한다. 그는 이전에 쓴 책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위험을 예견하고 경고했다. (이 책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 출판됐지만, 연구와 집필 작업은 위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그는 새로운 저서인 “우리의 달러, 당신의 문제”에서 우리가 세계 경제에서 달러가 수행하는 중추적 역할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모든 미국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어마어마한 특권”으로 묘사되는 세계 기축통화 보유국 지위를 통해 우리 모두가 큰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고프는 “달러화 덕분에 주택담보 대출, 자동차 할부 융자, 신용카드 대출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며 “달러화로 인해 미국인이 대출에서 적용받는 할인율은 0.5%에서 1% 사이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요즈음 우리를 둘러싼 온갖 소음 속에서 신호를 포착하기 어려울 때가 더러 있지만 로고프는 금리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핵심적인 사실은 수 십년 간의 하락과 저금리 이후 지속된 낮은 이자율이 역사적으로 정상적인 수준까지 올라왔고,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부채부담을 위험스럽게 만드는 요소다.
현재 연방정부가 지불해야 할 부채 이자는 연 1조 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국방비보다 더 많은 액수다.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이런 상황에 처한 강대국은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로고프가 전망한 경제 폭풍은 트럼프의 경제정책들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들이닥칠 것이다. 극적인 정책번복이 없을 경우, 로고프는 트럼프의 임기말까지 금융위기나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혹은 둘 모두가 발생할 확률이 50%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우리가 직면한 압력중 일부는 미국의 통제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은 달러화가 누리는 높은 지위에 늘 반감을 품어왔고, 특히 미국이 달러화를 무기화하기 시작하면서 반감도 커졌다. 워싱턴은 수 십개국에 무분별하게 제재를 가했다. 그중에는 일방적인 제재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제재가 통하는 이유는 달러화의 특별한 지위 때문이다.
유럽, 중국, 러시아 등 거대 국가는 달러화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용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딘 작업이긴 하지만 달러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현재로선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단일 통화가 없지만 로고프는 달러화가 비트코인과 같은 대안 통화뿐 아니라 다른 통화 바스켓에 점유율을 빼앗길 것으로 믿는다.
이건 전적으로 트럼프 탓만이 아니다. 로고프는 지난 수 십년간 미국의 재정정책 측면에서 양당 모두 무절제한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은 무모한 감세를 일삼았고 민주당은 지출을 자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따른 계산이 명확하게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5년에 걸쳐 늘어난 GDP 대비 부채비율은 대부분 감세로 인한 것이었다.)
로고프는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이 우파와 좌파 모두로부터 훼손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양당 모두의 책임이긴 해도 트럼프가 연준을 상습적으로 공격하고, 연준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위협하며 독립기구의 합법성에 대해 법정에서 이의를 제기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로고프는 이렇게 말한다: “달러의 역할중 상당부분은 훌륭하고 안정적이며 예측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연준의 정책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성, 세계 수퍼 파워로서 미국이 얻는 신뢰성에서 비롯된다.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면서 달러화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해결책은 있으나 통증이 없는 해법은 없다. 연방 효율성부(DOGE)는 한마디로 처참한 실패작이었다: 효율성부가 절감했다는 1,659억 달러 가운데 실질적이고 확인가능한 삭감액은 대략 650억 달러 정도이지만 이 마저도 과장일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연방예산에서 덜어내겠다고 자신만한하게 제시했던 목표액인 2조 달러의 3%에도 못미치는 수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적자를 축소하는 길은 메디케어, 소설시큐리티와 국방 등의 대규모 프로그램 축소와 세금인상이다. 지금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트럼프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막대한 감세가 시행되고 국방비는 무려 13%나 늘어난다.
로고프는 “우리는 과거 수 십 년간 현명하고 운도 좋았다”며 “이로 인해 가시적인 대가 없이 적자를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경제정책은 “내 생애 최악의 수준일만큼 어리석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의 운은 이미 다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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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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