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방적·강압적 관세 협상
▶ 안팎 비판에도 꺼내든 ‘관세 폭탄’
▶ 감세로 인한 적자 해소 부족하지만 외교 승리 상징 등 ‘정치 명분’ 쌓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나토 등 동맹에 ‘국방비 증액’ 압박
사실상 ‘미 무기’ 구매하라는 의미
‘안보 우산’ 활용 경제 이득 극대화
‘패배자 경쟁’ 구도로 협상력 확대
타 국가 성장 제한하고 이득 챙겨
과거 식민지 같은 ‘종속관계’ 우려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3대 정책 키워드로‘감세’와‘관세’와‘규제 완화’를 강조한다. 개괄적인 구상은 이렇다. “감세로 투자·소비 여력을 높이되 추가적인 재정 적자는 관세 수입과 규제 완화로 메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자 “감세와 규제 완화를 함께 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트럼프의 감세법안에 따라 향후 10년간 발생할 추가 적자 규모는 3조 달러(약 4,175조 원)에 달한다. 감세에 따른 경기 활성화로 추가 세수를 기대한다지만, 같은 주장을 폈던 트럼프 1기 동안 적자 규모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규제 완화는 추가로 발행할 국채를 시중은행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이라 그 자체로 적자 축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 트럼프의 일방적·강압적 ‘관세폭탄’이쯤 되면 트럼프가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연이어 ‘관세폭탄’을 꺼내든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는 지난 4월 주요 교역국들에 일방적으로 부과했던 상호관세 협상시한 목전에 반도체와 의약품을 콕 집어 품목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어떤 식으로든 관세 수입을 늘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이미 보편관세 10%를 부과했고, 앞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철강, 알루미늄, 구리 등에 각각 품목관세를 부과했다. 물론 하나같이 일방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관세폭탄을 던져서 교역국들을 굴복시킨다고 해도 관세 수입으로 감세에 따른 추가 재정 적자를 메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5개월간 미국의 관세 수입은 1,000억 달러(약 139조1,300억 원)였는데, 본격적인 관세 시행 전에 수입을 대폭 늘린 결과임을 무시하고 이를 일반화하더라도 앞으로 10년간 누적 관세 수입의 최대치는 2조4,000억 달러(약 3,339조 원) 안팎일 것이다. 더욱이 국제 교역의 성격상 관세 수준이 과도하면 도리어 교역량 감소에 따른 세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나 베선트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관세를 소리 높여 외치는 건 어찌 보면 ‘블러핑’이자 ‘성동격서’에 가깝다. 관세는 정책적인 요소가 짙고 협상의 외피를 두를 수 있는 만큼 정치적 명분 확보용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실제로 원하는 건 관세 인상이 아니라 ‘다른 무엇’일 거란 얘기다. 당장 트럼프의 일방적·강압적 요구에 따라 진행되는 관세협상에선 대부분의 경우 관세는 되레 부차적이거나 그의 외교적 승리를 상징하는 숫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 뉴노멀이 된 경제·안보 패키지 협상트럼프는 유럽 주요국들과의 관세협상을 전후해 줄곧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압박했다.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고, 때로는 미국의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안보 불안감이 커진 유럽 주요국들에 있어 국방비 증액과 자위력 강화는 사실상 미국산 무기 구매와 같은 의미였다.
트럼프는 쌍둥이(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 축소와 제조업 부흥을 통해 ‘마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앞세우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미국에서 전통 제조업의 부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트럼프는 반도체·인공지능(AI)·이차전지·항공우주·자동차·에너지·조선 등 최첨단 기술집약적 산업과 전통 제조업의 동시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유럽연합은 최근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6,000억 달러(약 834조 원) 규모의 직접투자 및 군사장비 구매를 약속했다. 한국과 일본도 각각 3,500억 달러(약 486조6,000억 원)와 5,500억 달러(약 764조5,000억 원) 상당의 직간접 투자에 합의했다. 한국과 일본과 EU는 이를 통해 트럼프가 일방 부과한 상호관세를 15%로 낮출 수 있었다.
■ 동맹국도 ‘패배자 경쟁’에 내몬 트럼프최근의 상호관세 협상에서 드러난 특징 중 하나는 트럼프가 교역국들 사이에 ‘패배자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특정 국가와의 협상 결과를 다른 국가와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한다. 이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을 잃지 않으려면 좀 더 양보하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개별 협상국 입장에선 관세를 다른 나라보다 1%라도 더 낮추는 게 중요하다. 미국 시장에서 자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다른 무엇’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직접투자 확대, 기업·공장 이전, 추가 무기 구매, 농축산물 수입,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등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국가들이 많으면 대미 협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트럼프로선 최상의 협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이 패배자 경쟁인 또 다른 이유는 협상 상대국의 산업생태계가 흐트러질 수 있어서다. 한국만 해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SK, LG 등 투자 여력이 큰 대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는 결과적으로 양질의 국내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낮추게 된다. 제조업 공동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국내 산업 기반이 약화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심각한 건 패배자 경쟁이 주요 동맹국들 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과 독일은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관련 산업의 비중이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높다. 모두들 ‘다른 무엇’을 조금 더 내주더라도 미국 시장에서 이 분야의 경쟁력을 유지·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당장은 세 나라 모두 자동차(부품) 관세를 15%로 낮췄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같이 ‘악마’가 숨어 있는 디테일이 명확하지 않은 합의여서 여전히 판을 흔들 수 있는 키를 쥔 건 트럼프다. 게다가 트럼프는 일본과의 협상 합의 후 “다른 나라도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춰주겠다”며 EU와 한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패배자 경쟁을 요구했다.
■ ‘신제국주의’ 시대… 전략적 대비해야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국제질서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국제무대에선 상당 기간 호혜적인 외교 협상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민주적 가치, 평화 수호, 방어적 물리력 등을 기반으로 한 ‘동맹’의 정의는 ‘이해관계’의 산물로 수정됐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트럼프의 일방적·강압적 관세 부과로 몸살을 앓는 동안 미국과 관계가 소원한 국가들은 오히려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제국주의 시대의 흥망성쇠는 익히들 아는 바다. 트럼프의 미국은 경제로 포장된 ‘돈’을 매개로 작동하는 제국주의의 21세기 버전일 수 있다. 서방 유력 언론들에선 ‘신제국주의’ 혹은 ‘경제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관세와 무역장벽, 기술 패권과 공급망 통제, 국제 규범의 선택적 준수, 일방주의 등은 군사력에 기반한 식민통치만큼이나 다른 주권국가의 경제적·외교적 자율성과 선택권을 상당 부분 제약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이후의 미국이 트럼프 1기 이후 바이든 행정부처럼 기존 세계질서를 재구축하는 쪽으로 진로를 바꿀지 장담하기 어렵다. 관세와 무역 규제와 기술 통제로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동맹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성장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일방적·강압적 관세 부과는 약탈적인 종속관계로 가는 시작점일 수 있다. 긴 안목으로 전략적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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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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