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주대식 장로/샌프란시스코 성결교회
▶ 우리가 뿌린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기를 기도

단기선교에 참가한 청년들이 현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고있다. <사진 JBAUM>
2025년 7월 30일, 세쨋날 오전에는 마약 중독자 수용시설을 방문하여 어제와 비슷하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고 잠시 동안 친교를 나눴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수용시설의 분위기는 섬득하고 음산했다. 정문에서부터 강당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3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매 문마다 굳은 표정의 문지기들은 우리를 들여보내고는 다시 문을 잠궜다.
그들은 어느 정도 긴장하고 있었고 매서운 눈초리로 수용자들과 우리들을 번갈아 보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강당에서 만난 수용자들의 팔과 다리에 새겨진 문신이었다. 마약과 문신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마약및 알콜중독자 재활시설을 방문하여 장 전도사가 찬양을 인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사진 JBAUM>
어떤 청년은 눈동자의 촛점이 흐릿했고 어떤 청년은 의미 없는 단순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수용자들을 통솔하는 책임자의 구령은 우렁찼고 그들도 못지 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구령을 복창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그 안에서의 생활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 같았고 나름대로 필요한 훈련은 빡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연유로 마약과 연결되었던 것일까. 손에는 하나같이 성경책이 들려있었다. 과연 그들은 평소에도 성경을 읽을까. 그들의 재활은 가능할까.

집회 시작 전 노방전도 나가기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때가 오후 5시경인데 하루 최고 기온인 110도를 기록한 날이다.<사진 JBAUM>

멕시칼리 단기선교 마지막날 프론테라 교회 집회에서 한승근 목사가 스패니쉬로 설교를 하고 있다.<사진 JBAUM>
이 것은 이 번 봉사기간 동안에 느낀 두번째 의문이었다. 나의 회의적인 시선은 곧 '점적천석(點滴穿石)'이라는 옛말로 건너 뛰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오랜 세월 한 곳을 공격(?)하면 결국 바위에도 구멍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장 전도사가 전하는 말씀이 그들의 가슴에 떨어지는 하나의 작은 물방울이기를 기원했다. 세상에 헛된 수고는 없다는 말이 있다. 저녁에는 김용인 선교사가 개척한 '블론타' 교회에서 성령부흥 집회를 가졌다. 설교는 황유선 목사께서 담당하셨다. 장 전도사의 즉석 통역으로 전달되는 설교는 현지 성도들에게 설득력있게 스며들고 있었다. 연신 '아멘'이 터진다.
2025년 7월 31일 넷째 날 오전에는 도심지 한 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배회하는 노숙자들을 위한 작은 예배를 드린 후 준비해간 샌드위치와 음료를 전달했다.
그들만의 찬송가와 복음 성가가 흥겹다. 함께 박수치며 찬양하는데 원래 낙천적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신나는 선율이 많고 율동은 재미있었다. 우리의 마음에도 느낌이 닿는다.
음식 전달 순서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를 인솔하는 책임자가 젊은 여학생 그룹을 한 쪽으로 불러 모으더니 간단한 교육을 시킨다. 미소 띤 얼굴과 친절한 태도로 전달하되 혹시 그들이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더라도 부드럽게 피하라고 요령을 일러준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비하자는 지혜다. 한 끼의 식사를 구걸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말이 먹힐까.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겠다(마부직침 摩斧作針)는 노파의 마음가짐으로 그들과의 상면에 대한다. 저녁 집회는 '프론떼라'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하기로 돼 있다.
그 교회 역시 김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 중 하나였는데 성도들의 예배 열기는 낮의 불볕 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사람들은 언제 믿음이 뜨거워지는가. 아무래도 갈망하는 것이 있을때가 아닐까.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 - -.
빈곤에서 탈출하고 싶은 열망과 영적인 갈급함은 쉽게 신앙의 불꽃으로 옮겨 붙기 마련이다.
그건 기복신앙이라고? 신앙에서 기복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무엇이 남나?
인간은 복을 원하고 신은 핍박 받는 인간에게 많은 복을 허락하셨다. 모두들 진지한 모습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었고 친교 시간에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나누는 눈길은 따뜻했다.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만큼만 된다면 세상에 갈등이란 없을 것 같았다. 지난 30여년 간의 포교 생활을 일구어 오는 동안 김 선교사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넘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족함이나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한숨을 푹 내 쉰 다음 털어 놓은 애로 사항은 역시 사람의 문제였다고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하고 그들의 근거도 없는 중상 모략에는 끝도 없는 절망감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래 어떻게 그 어려운 과정을 이겨 내셨어요?'
'그게 사람의 힘으로 됩니까? 다 지나간 일입니다.' 하고는 허탈한 웃음으로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였다. 왜 사람들은 배신할까. 배신하면 자기에게 더 큰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배신은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나방이의 운명이다. 배신의 끝은 죽음이다.
성경에도 배신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인간사에 배신이 없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배신자 때문에 크게 잃는 것이 있다면 그 경험을 통해서 더 크게 얻는 것이 있다는 역설은 통한다. 그래서일까 배신 없는 인간사는 생각할 수 없다. 왜 사람들은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될까. 이게 이 번 경험을 통하여 얻은 세번 째 의문이었다.
선교기간 동안 우리는 매일 길거리 전도에 나섰다. 전단지를 들고 거리를 걷다보면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집집마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담장과 창문이다. 하나의 예외도 없다.
원래 철창이란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감옥의 철창은 안에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 단죄의 장치다. 그러나 여기 철창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만든 거부의 몸짓이다. 철창이 무겁고 살벌할수록 대화의 장벽은 높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이 번 우리의 사역은 그 철창을 부수기 위한 작은 시작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와 함께 한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새벽예배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열정은 진지하고 순수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답고 착하고 예쁠 수가 없다. 선교센터에서 우리들에게 식사를 재공하신 선교사 부인과 협동하는 다른 손길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는 말씀으로 선교 보고를 대신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어느 재벌 회장의 저서 제목을 인용하며 이 번에 뿌린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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