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두 남녀가 만나 부모를 떠나 새 생명을 탄생시키며 죽는 날까지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억겁의 인연보다 더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이혼이 흔한 시대에 인연, 신비 운운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고라고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러기에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치의 다양성이 극분화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잠깐도 참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손해라고 생각하면 불법도 불사한다. 더구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최고의 가치인 미국에서 인내심의 최고 수련장인 결혼을 잘 유지해 나가는 일이란 고행일 수 있다.
요즘, 동구나 서구를 막론하고 황혼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주로 여성 쪽에서 원하는 경향이다. 한때 일본에서는 남편이 퇴직하는 날이 이혼하는 날이라는 말이 있었다. 일생을 참아온 아내들이 남편의 퇴직금을 반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다. 자녀 키우느라 평생 고생했으니 노후에 잘 살아보자던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아내가 숱한 세월동안 어떤 앙심(?)을 품었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한국인의 황혼이혼율도 일본이나 서구에 못지 않다. 가부장적인 체제로 굳어진 나라에서 이혼율이 서구보다 더 높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오늘, 남편과 혹은 아내와 함께 한 지난 삶이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억울함만 돌아보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그 배우자는 귀한 목숨으로 태어나 수많은 기회와 인연들을 멀리하고, 나와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볼품없이 늙고 망가진 몸이다. 내가 상대방을 참은 양만큼, 희생한 만큼, 상대방도 나의 못된 부분들을 참고 견디며, 감수해 왔다. 그 배우자가 혹 자녀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이혼을 망설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언제까지 자신의 못된 점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물론 배우자의 행동이 치유 받지 못한 과거의 상처의 반향일 경우, 그가 그 늪을 헤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랑이란 긴 인내이고 긴 고통이라며 끝없이 상대방의 인내를 바닥내는 배우자들은 변화되지 않는 한 씁쓸한 황혼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오늘,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가치 추구와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서 요즘처럼 결혼생활을 함에 있어서 완벽한 성품의 소유자가 필요한 때도 드물지만, 그것이 어찌 가능하랴. 다행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점은 허다한 단점을 덮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정리하면서 "당신처럼 따뜻한 가슴을 소유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어요. 지난 세월이 조금도 아쉽지 않아요" "내 생애동안 가장 큰 행운은 당신을 만난 것이고, 가장 현명했던 판단은 당신을 선택한 것이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단심으로 선행을 적립할 필요가 있다.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이다.
아내에게 큰소리 친다고, 남편 위에 군림한다고, 잘난 남자, 똑똑한 여자라 평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주어야 한다. 자신의 취향에 편리하게 배우자를 빚으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지닌 독특한 스타일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 결혼의 진정한 동반자 개념일 것이다.
가정을 지키기가 힘든 시대이긴 하지만, 상황과 환경을 핑계하기보다는 나의 자유의지와 주인의식을 현명하게 사용할 일이다. 정신적인 안정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좋은 결혼은 만들어진 것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인내와 존경과 이해와 용납으로 만들고 가꾸어 가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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