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기의 특징은 승부가 명쾌히 가려진다는 점이다. 경기중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여 싸우지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얻은 득점으로 승부가 가려지면 이긴 편이나 진 편이나 모두 그 결과에 승복한다. 경기를 구경하는 관중들도 두편으로 갈려서 응원을 하지만 경기 결과에는 모두 승복할 수 밖에 없다. 지난번 뉴욕 양키스와 메츠팀의 경기도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양팀의 실력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만큼 막상막하인데다 심판이 판정하기 어려울만큼 애매한 득점과 실점이 발생하면 시비가 일어난다. 심판과 선수들 사이에 시비가 일고 양팀의 선수들간에 시비가 일어나 심하면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진정되지 않고 과열하면 양편으로 갈려서 응원을 하던 관중들까지 흥분하여 경기장안으로 방석과 맥주병이 날아드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승부가 깨끗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까지 이번에 이런 시비에 휘말려 있다. 부시후보와 고어후보의 팽팽한 승패가 가려지지 않자 마지막으로 남은 플로리다 주의 승패를 놓고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지 일주일이 넘어도 당선자가 없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재검표를 마친 플로리다의 개표결과 5백만표중 부시가 겨우 3백여표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고어 측은 말썽많은 팜비치 카운티의 표에대해 수검표를 요구했고 수검표에서 고어의 표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자 부시측은 수검표를 못하도록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부시후보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주정부는 개표마감 시간을 넘긴 개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수검표에 제동을 걸었다. 또 고어측은 이 제동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야말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
미국역사에는 이번보다 더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통령선거도 있었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시절 미국에는 연방파와 공화파의 대립이 심해 정치판이 어지러웠다. 연방파는 신생 13개주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며 새로운 이민을 억제하려는데 반해 공화파는 새로운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서부와 남부로 영토의 확장을 주장했다. 외교적으로는 공화파가 친 프랑스인데 반해 연방파는 프랑스와 거리를 두고자 했다.
2대 선거에서 연방파의 존 애덤스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통령에는 공화파의 토마스 제퍼슨이 당선됐고 3대 선거에서 제퍼슨은 연방파 후보와 똑같은 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하원의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860년의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예 제도의 존속과 폐지가 쟁점이었다. 결국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공화당의 링컨이 당선되자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필두로 남부 6개주가 합중국을 탈퇴하여 남부연합을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긴 남북전쟁을 겪었고 이 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정통성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번 선거의 대립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현격한 정책차이로 인해 심화된 감이 없지 않다. 부시는 국방위주와 부유층 위주의 정책, 고어는 복지위주와 서민층 위주의 정책으로 너무 대립적이었기 때문에 선거에 많은 투표자를 끌어내어 과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리하여 국론분열의 위기운운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이 선거분쟁의 귀추를 미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실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 어떤 정책을 위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시나 고어가 대통령이 되어 자기의 정책으로 정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폐해가 나타날 경우 다음번 선거에서 반대당이 집권하게 되어 법과 제도가 수정되기 때문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미국의 선거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지금 고어와 부시의 쟁점을 해결하는 열쇠는 법도 아니고 소송도 아니다. 유권자의 투표를 최대한 찾아내서 반영하면 된다. 마치 운동경기의 애매한 심판을 슬로우 비디오로 재검하듯이. 고어와 부시도 이 표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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