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플로리다에서는 차기 미국의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부시, 고어 후보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미 국민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들도 이로 인해 벌어질 향후 미국의 장래 에 대해 티격태격 논란이 분분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후보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이번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소수민족이 예전에 비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이는 선거결과 백인 중산층 이상을 지지기반으로 전통적인 보수주의 노선을 견지해오고 있는 공화당 측과 전통적으로 소수민족과 여성, 그리고 자유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사람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계가 예전보다 훨씬 더 팽팽히 맞서고 있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3억이라는 전 미국의 인구 중 플로리다주에서 치러진 수 검표 결과 양 후보의 표 차이가 불과 300여 표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소수민족이 행사한 한 표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실감나게 한다.
소수민족일지라도 힘만 모으면 미국의 대통령 당락까지 좌지우지하는 힘을 발휘한다고 볼 때 어떠한 이유로든 이번 선거에 불참한 유권자들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사안이다. 예전에는 사실상 소수민족이나 여성들은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었다. 백인들이 투표를 해주지 않으면 당선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결과는 소수민족도 이제는 힘없이 무시만 당하는 약한 인종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상원의원 당선에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다. 아시안 히스패닉계, 라틴계와 같은 이민자 그룹과 소수민족 사이에서 거의 그를 지지하는 몰 표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할 때 미국은 이제 백인만이 주도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특성을 앞으로도 더욱 살려 그대로 가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소수민족의 힘은 앞으로 이 나라의 새로운 이민자들이 더욱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이나 가장 먼저 이 땅에 들어온 민족들로 인해 뒤늦게 들어온 후발주자 이민자들은 그들의 텃세로 차별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탈리안이 그랬고, 유태인들이 그랬다. 그 중에서도 흑인계의 차별은 극심할 대로 극심했고, 이들은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 뒤이어 히스패닉, 후발주자로 중국인, 일본, 한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안들이 이 땅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으레 ‘미국’ 하면 백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판도는 얼마 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이에 위협을 느꼈는지 보수 정치인들은 지난 96년부터 대대적인 반 이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반감과 생존의 위협을 느낀 소수민족과 후발 이민자들은 강력하게 반발, 그 동안 숨죽이고 있던 많은 소수민족들이 결국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제 미국은 확연하게 두 쪽으로 갈라졌다. 양당을 지지하는 층과 백인이 대부분인 중부, 소수민족이 대다수인 동부 및 서부, 부자와 서민 등으로 양분됐다.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모여진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그리고 그 힘이 바로 오늘날 막강한 미국이 있게 만들었다. 이를 외면한다면 미국이 제아무리 세계최강국이라 할지라도 천년의 로마제국과 같이 분열돼 언젠가는 쇠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제 소수민족은 더 이상 소수민족이기를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연대를 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과연 미국인들은 읽고 있는지... 이번 선거결과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기회 미국의 정치가들은 무엇이 건국이념이고, 무엇이 오늘의 미국이 있게 만들었는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깨달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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