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사는 이야기
▶ 전효숙 (윌셔연합감리교회 지휘자)
기호네 엄마는 손가락이 예쁜 여자다. 하얀 손에 가늘고 긴 손톱은 언제나 새빨간 매니큐가 칠해져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게다가 은은하고 깊은 빛을 발하는 진주 반지를 끼고 있으면 그 손가락은 아예 예술품이다.
기호네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그 손가락에 진주가 아니라 사파이어 건 다이아몬드 건 어떤 보석 반지라도 낄 수 있는 사람이다. 보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치고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없는 부자다. 크기나 색깔이나 모양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것저것 챙길 수 있는 사람이다.
기호네 엄마는 언제나 손을 그렇게 다듬고 아끼지만, 보석이 많다고 함부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아니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가 가득한데도 오로지 손가락에 반지만 고집하는 사람이다. 진주 반지는 언제부터인가 기호네 엄마의 분신이 되었다.
10년 전 태국에서 이민을 왔을 때 어떻게 미국생활을 할까 걱정하던 일이 눈에 선하다. 보석 가공 기술을 배운다며 밤낮으로 뛰어 다니더니 몇 년 새 무슨 자격증인가를 온 벽에 가득 걸어놓았다. 유독 진주 반지를 아끼는 이유는, 진주가 탄생하기까지 조개가 겪어야 하는 살을 에는 그 아픔을 알고 나서부터다.
기호네 엄마는 보석 장사가 되었고, 기호네 아빠는 애꾸 안경을 쓰고 가스 불로 금을 녹이고 은을 녹이는 연금술사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기호네 엄마는 그냥 보석을 진열해 놓고 파는 사람이 아니라 보석을 빚는 사람이다. 그 손은 언제나 남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모델이자 샘플이고, 그 많은 보석 반지들은 손님들에게 팔아야할 물건들이다.
이 여러 보석들 가운데 하필 진주 반지가 그렇게 귀한 이유는 기호 때문이다. 기호는 이 보석가게에서 자랐다. 투명하고 빛나는 보석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랐다. 진열장에서 오색 영롱한 빛깔들이 저마다 쏟아내는 그 현란한 아름다움들을 뒤집어쓰며 자랐다. 기호는 어릴 때부터 엄마 손가락의 진주만 보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고, 진주만큼이나 눈이 빛났다.
기호네 엄마는 손이 예쁘기도 하지만 손이 맵기도 한 사람이다. 아들 기호에게 그 예쁜 손으로 친구 같은 사랑을 쏟다가도 무서울 땐 숨이 멎을 만큼 매서운 손의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기호는 그런 엄마 손에서 자랐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학부를 마쳤고, 이젠 어엿한 의과대학생일 뿐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다. 그 어느 보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고 다듬은 탓이다.
아이 키우는 일이 어찌 말처럼 그냥 쉽게 될까 마는, 기호는 며칠 전 엄마를 아주 크게 놀라게 한 모양이다. 스물 셋 나이에 느닷없이 장가를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직 완성품이 되려면 차례 멀었는데, 아직 다듬을 게 너무 많은데, 아직 닦아야 할 흠이 온통 남아 있는데, 디자인도 좀 더 세련되게 꾸며야 하고, 색깔도 좀 더 난하지 않게 보듬어야 하고, 쉽게 깨질지도 모를 귀퉁이에는 보철도 해야 하고 . . . 걱정이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는다.
이 아들이이야 말로 절대로, 절대로 내다 팔 물건이 아니어서 한번도 손가락에서 빼 본적이 없는 반지다. 그런데, 반지의 주인이라고 여겼던 엄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훌쩍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기호네 엄마는 한참을 울었다. 하얀 진주 알 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엉겁결에 결혼식을 올리고는 젊은 시어머니가 되었다.
기호네 엄마 손은 더욱 하얀 색이 되어 고와졌다. 손톱은 더욱 빨갛고 자극적인 색으로 칠하더니, 세상의 모든 보석은 아름답다며 반지는 진주만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목걸이 귀걸이도 짝으로 맞추어 멋을 내기로 했단다. 진주 반지를 뺐더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석이 또 하나 그냥 굴러 들어왔다고 입이 함지박 만해진 것이다. 보석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보석이 알아보고 찾아온다며 진열장 유리를 닦고 또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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