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휘청대던 미국 경기는 9.11 테러로 결정타를 맞았다. 테러 응징 차원에서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경제에 어떤 돌파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러나 최근 사실상 종결된 이라크전은 미국 경제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인 비즈니스도 미국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이 시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업계 정상급으로 발돋움한 한인 기업들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희망과 자신감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 한인 기업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위키드 패션은 미 동부 지역 대표적 한인 의류업체다. 위키드 패션이라면 잘 모르는 이들도 ‘사우스 폴(South Pole)’이라는 브랜드를 대면 단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우스 폴’은 흑인과 히스패닉은 물론 백인 중산층 젊은이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끌면서 미국 남성 캐주얼 시장에서 대표적인 힙합 토털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 상표는 김대원 사장이 한국인의 남극 정복 뉴스에서 영감을 얻어 7년 전 만들었다. 티셔츠와 진, 재킷 등의 캐주얼 의류를 중심으로 한 토털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다. JC페니, 시어즈 등 대형 백화점 체인은 물론 별도로 10개의 판매지부를 두고 미 전역에서 10대와 20대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공략에도 성공해 한국과 일본 등 아시
아는 물론 유럽에도 ‘사우스 폴’ 의류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현지에서 직접 생산돼 롯데, 현대 백화점 본점에 매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 내 유명 백화점은 물론 서울 압구정과 신촌 등 젊은 세대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독립 매장이 있다. 특히 중국 및 인도네시아의 현지 공장은 한국이 본사여서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에서의 판매는 해외 수출에 포함된다. 이 공로로 김대원 사장은 한국 정부로부터 ‘2001년 무역의 날’ 수출 유공자로 선정돼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일본 역시 현지 생산, 판매를 하고 있다. ‘진스 메이트(Jean’s Mate)’라는 백화점 체인을 통해 전역에 200개 매장이 있으며 오사카, 규슈 등의 독립매장까지 합하면 약 300개 의류점에서 ‘사우스 폴’이 판매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구권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는 디스트리뷰터를 통해 각국에서 ‘사우스 폴’을 팔고 있고 캐나다는 미국 본사에서 직접 수출한다.
김대원 사장은 "지난해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매출이 50% 늘어난 1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며 "직원들을 비롯해 모두가 열심히 도와준 덕분으로 매년 30% 이상씩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에는 그동안 키워온 외형을 실속 있게 만들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디즈니월드 상표를 부착,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획득해 ‘Lot29’라는 브랜드로 제품의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다.
뉴저지 칼스타트에 8만스퀘어피트 규모의 오피스와 창고가 위치해 있고 현재 1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생산은 전량 해외에 맡겨 한국과 일본, 동남아 등에 공장이 있다. 특히 한인들의 능력을 중시하는 김대원 사장의 경영 철학 덕에 직원 중 70%가 한인이다.
위키드 패션의 핵심부서라고 할 수 있는 기획디자인부 만큼은 20명 전원이 모두 한인이다. 김 사장은 "패션 의류인 만큼 디자인 분야가 가장 핵심부서"라며 "유행의 흐름을 파악하고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옷과 상품을 적시에 개발해야 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채용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디자인 분야에서 한인들의 능력은 타민족보다 앞서고 심지어 우수 인
력을 뽑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채용해 오는 경우도 있다.
위키드 패션의 성공 원인을 묻자 김 사장은 ‘좋은 선배’ 덕분으로 돌렸다. 단국대 기계공학과 3년을 중퇴하고 77년 미국으로 온 김 사장은 야채 가게에서 일을 했다. 1년 뒤 조일환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코만 스포츠’에 취직하면서 의류업을 시작하게 됐다."의류를 한국 등에서 수입해서 관리 및 판매하는 일을 배웠다. 여기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3년뒤 브루클린 피트킨 애비뉴에 소매점을 오픈했다.
조 사장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줬고 얼마 후 자메이카에서 ‘영맨 스페셜리스트’라는 가게로 확장 이전했다. 특히 90년부터는 ‘코만 스포츠’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의류 수입, 판매를 시작했다. 이때도 조 사장이 은행을
소개시켜주는 등 비즈니스와 관련한 여러 가지 도움을 줬다. 더구나 사실상 ‘코만 스포츠’와 같은 일을 하게돼 경쟁업소였는데도 불구하고 조 사장은 기획실로 데려가 회사의 영업과 관련한 모든 노하우를 알려줬고 심지어 창고까지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96년 뉴저지 칼스타드로 옮겨오면서 위키드 패션을 창업했다. "오랜 동안 의류를 판매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어떤 옷을 찾고 어떻게 유행이 변하는지 알게됐다. 이런 옷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사우스 폴’이 탄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위키드 패션 초창기 함께 일하던 남동생 김광원 사장은 ‘자신은 소매 판매에 더 관심이 많다’며 독립했다. 현재 뉴저지의 대표적 의류 체인점인 ‘어게인스트 올 오즈(Against All Odds)’를 운영하면서 ‘사우스 폴’의 성공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어게인스트 올 오즈’는 팰리세이즈 센터몰, 가든스테이트 몰, 우드브리지 매장 등 약 20개의 체인망을 구축한 뉴저지 대표적인 의류 소매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 위키드 패션김대원 사장
"좋은 선배 덕 톡톡히 봤죠"
일반 의류도 아니고 가장 미국적인 패션 의류인 힙합에서 한국인으로 ‘사우스 폴’을 성공시켰다. 이제는 전국 브랜드, 아니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케 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좋은 선배를 만난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밖에도 섬유강국이었던 한국이 조국이었던 점, 소매부터 시작해 도매 등 판매 노하우를 갖춘 점들이 현재의 위키드 패션이 성공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사우스 폴’은 미국의 대표적인 힙합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차근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슬램(SLAM)’ 등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잡지나 패션 매거진을 뒤적이다 보면 ‘사우스 폴’ 광고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년 2, 8월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의류쇼인 ‘매직쇼(Magic Show)’에서는 대형 전시장 건물 한쪽 면에 ‘사우스 폴’ 간판이 걸리는 등 미국 내 남성 캐주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문화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의류라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 힙합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은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 발전해온 문화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거의 마친 나이에 와서 생활 스타일이나 문화가 완전히 이질적인 힙합 문화를 파고들어 의류사업을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꿈도 꾸지 못했어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패션을 연구하고 이를 디자인
으로 개발해 낸 직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자신의 존재보다 항상 업계 선배와 부하 직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겸손함도 돋보인다.
<장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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