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투병 아버지, 나상욱에 희망메시지
▶ PGA 7년간 우승 없지만 만족…결혼은 빨리하렴
"경기 끝나고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제게 우승트로피를 안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더라구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뛰는 재미교포 나상욱(28·타이틀리스트)의 부친 나용훈(58) 씨는 21일 아들과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눈물부터 훔쳤다.
나 씨는 이날 새벽부터 자택에서 나상욱이 출전한 PGA 노던트러스트오픈 마지막 4라운드를 손에 땀을 쥐어가며 지켜봤다.
나상욱은 3라운드를 마치고 가진 전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에서 지켜보실 아버지를 위해 우승하겠다"며 PGA 투어 8년 차로서 첫 우승컵을 거머쥐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4라운드를 마친 결과 3위에 머물러 이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눈물을 닦으면서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며 멋쩍게 미소를 지은 나 씨는 이내 차분하게 아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갔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리비에라 골프장(파71.7천298야드)에서 진행된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나상욱은 3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컷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더 아파할까봐 쉽사리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나 씨는 그러나 이번 대회 직전에는 전화를 들었다.
그러고는 "우승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차분하게 하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운을 받은 것인지 나상욱은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 공동 2위를 달렸다. 1위와는 1타 차였고, 잘하면 역전승을 거둘 수도 있다는 기대를 부풀렸다.
나 씨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도 전화를 걸었는데 바쁜지 연결이 안 됐다"면서 "만약 제 목소리를 듣고 안정감을 찾았다면 어땠을지,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고 털어놨다.
8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은 나상욱은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고, 나 씨는 아들의 캐디백을 메기도 하면서 골프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4년 전 시즌 첫 대회를 앞두고 손가락을 다쳤을 때가 나상욱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다.
나 씨는 "오프시즌 때 철저하게 준비하고 ‘올해는 됐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한 채 다른 사람의 시합을 보고만 있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곱씹었다.
이어 "어린 시절 방황이야 누구나 하지만 프로에 입문하고서 완벽히 준비됐을 때 입은 부상으로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힘든 나날을 헤쳐 온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특히 닮았다.
나상욱이 대회가 끝나고 "아버지의 마음이 경기장에 와있는 것 같았다"고 했던 것처럼 나 씨도 "우리 애와 나는 마음이 통한다"고 했다.
나 씨는 "사실은 우리 아들이 나를 살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작년 말 한국에 잠시 들어온 나상욱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면서 아버지에게도 권유했던 것.
그 검사에서 백혈병이 발견됐고 곧장 치료가 시작됐다.
나 씨는 "병원에서 더 늦게 알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라고 하더라"면서 "약을 먹고 계속 치료를 하고 있으니 괜찮아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나상욱이 프로 골퍼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PGA에 진출한 지도 어느덧 8년째.
우승한 적이 아직 없어 조바심이 날 법도 하지만 나 씨는 아들의 선수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나 씨는 "상욱이가 자신보다 늦게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서 조급해했다. 부담이 됐을 것이다"라며 아들을 이해했다.
그는 이어 "남들은 어릴 때부터 대선수들과 경기하는 것을 마냥 부러워하지만, 본인의 부담은 매우 컸는데 케빈(나상욱의 미국 이름)이 그것을 이기고 꾸준히 해 온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남은 바람은 아들이 골프에만 갇혀 지내지 않고 인생의 더 큰 의미를 찾아가는 것.
나 씨는 "골프는 하늘이 내려준 기술이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면서 "케빈이 앞으로 사회에 좋은 일도 많이 하면서 행복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승이야 하면 당연히 좋은 것 아닌가. 기회가 곧 올 거라 믿는다"며 우승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드러냈다.
"투어는 마라톤과 같아 정신적 안정감이 중요합니다. 아직 싱글(미혼)인 아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빨리 결혼하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소원을 실은 바람이 부리나케 태평양을 건너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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