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덕선 (수필가)
“호텔에서 나오는 물을 꾹꾹 눌러서 많이 많이 잡수고 가세요.”
24년 전에 처음으로 하와이에 관광여행 왔을 때 여행안내자의 말이다. 화학적인 정수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무공해 상태로 정수를 해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하와이에서 마시는 물은 ‘생수’ 이며 ‘보약’이라고 까지 했다. 그러면서 하와이에서 살면 5년을 더 오래 산다고 까지 했다. 그때 나는 일 년 중 제일 바쁜 12월을 막 보내고 남편과 함께 하와이에 관광여행을 왔었다.
시카고의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아주 추운 날씨가 많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때 남쪽 따뜻한 곳으로 가서 겨울을 지내고 살아가다 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 형편은 되지 않아 미국 이민 온지 10년 만에 하와이 여행을 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것도 두꺼운 코트와 털이 들어있는 구두를 신고 사는 시카고의 겨울시즌에 왔다.
곳곳에 꽃이 반발하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활기차게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이 좋아 보였고 ‘지상낙원’ 이라고 불리는 하와이에 첫인상은 평화로움 자체였다. 그때 나는 “늙으면 이곳에 와서 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흘러 지난해 12월에 은퇴를 하면서 하와이 사는 큰 딸 아이가 둘째를 가져 출산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 하와이에 와 있다. 나는 시카고에서 아들 둘 딸 둘을 키우면서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바삐 살아왔다. 덕분에 아이들은 다 장성해서 자기의 길에서 제 몫들을 하면서 다들 잘 살고 있다. 손자 넷과 손녀 셋을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며 바삐 살아온 터라 손자 손녀 기저귀하나 갈아주지 못하고 할머니 이름만 듣고 살았다. 딸이 둘이지만 딸 아이의 출산 뒷바라지도 처음이다.
딸 아이는 오자마자 하와이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도 좋다면서 나를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라고 성화다. 맑은 공기, 좋은 물은 건강의 첫째 조건이란다. 그런 조건을 갖춘 하와이는 기후도 좋아 메인 랜드에 사는 것 보단 10년은 더 오래 산다고 딸은 한술 더 뜨고 있다.
그 동안 저희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것을 알고 있는 큰딸 아이는 이제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HAPPY 한 것과 HEALTHY 한 것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저희들이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을 하지 마란다. 장성한 아이들이 하는 말만 들어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루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데리고 주립 도서관엘 갔다.
1만 팔천 권이나 된다는 많은 한국 책들의 장서에 놀랐고 처음 개인이 설립한 ‘문스 북 클럽’이 ‘한국도서재단’이라는 재단을 탄생시켰고 이 재단이 주축이 되어 지금까지 신간서적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했다. 한류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한국 DVD 는 이곳 현지 주민들에게 한국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몇 권 빌려와서 첫 장을 펴보니 이 책은 누가 기증했고 운임은 누가 부담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개인이나 사업체들이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다른 주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사는 시카고에서도 도서관이 있어 한국 책들이 조금씩은 있다. 그러나 만 팔천 권이나 되는 장서는 없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에 몇 나라들의 책들과 함께 진열되어있다. 그리고 이곳 주립도서관에는 한국도서코너가 따로 있어 내가 보기엔 적어도 8,000 스퀘어피트 정도는 되어 보이고 풀 타임으로 한국 분이 있어 모든 일을 한국말로 친절히 도와주고 있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주립 도서관 web site 들어가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주문할 수 있고 그 책을 내가 사는 집 가까운 도서관에서 픽업할 수 있고 리턴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보고 싶은 책이 없을 경우엔 한국에다 주문을 한 후 들어오면 연락해 준단다. 참으로 이런 좋은 시스템은 미국 내에선 하와이 한 곳뿐인 것 같다.
이런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수고한 여러분들 중에 문 숙기님의 뜨거운 열정이 뿌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신 분으로 존경이 간다. 문숙기님은 하와이 주립도서관 시스템을 통해 한국 도서와 DVD 보급으로 한인동포들의 정체성 함양 및 지역사회에 한국문화를 홍보하고 있는 한국도서재단 설립자로서 재외동포 권익 신장을 통한 동포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 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커다란 박수를 보내며 축하 드린다. 존경스럽다. 마땅히 받아야 할 상이다.
‘한국도서재단’은 다른 주에서도 본 받아야 할 시스템이다.
내가 34년을 살아온 시카고에도 이런 제도는 없다. 나는 시카고에 돌아가면 하와이의 ‘한국도서재단’에 대한 얘기를 할 것이며 늦게나마 이런 좋은 제도를 본받도록 우리 여성 단체는 물론이고 시카고 한인사회에 알리고 싶다.
또 나는 이곳에 오자마자 24년 전에 폴리네시안 민속촌에서 딱 한번 배웠던 훌라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에어로빅, 수영, Stretch 댄스, Therapeutic 운동도 하고 보고 싶은 책들도 마음대로 보면서 지내다 보니 하와이가 점점 좋아지며 재미가 붙고 있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하와이의 겉만 보았는데 속을 차차 하나씩 알면서 딸이 나를 하와이 사람을 만들려고 작정한 것에 서서히 빠져들어 가고 있다. 딸은 대학동창이 하와이에 사는데 놀러 왔다가 하와이에 반해 하와이에서 살기 시작 한지 17년째이다. 딸은 오히려 나를 보살피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하며 편안한 노후를 즐겨야 한다면서 나를 하와이에 묶어 두려고 한다.
딸이 그럴수록 내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시카고로 돌아가서 돌봐 드려야 할 노인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24년 전 하와이관광을 처음 왔을 때 “늙으면 이곳에 와서 살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 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와이가 좋아지고 있다. 아니 “하와이가 나를 사랑하고 있나 봐” 혼자 중얼거리며 지금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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