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도 즐길 줄 알아야’
▶ 2. 크레이 김근범 수석부사장
실리콘밸리는 부와 명예가 꿈틀거리는 아메리카 드림의 본거지로 불린다.
온갖 첨단 기술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신기술 메카에서 많은 이민자들은 창업이라는 꿈으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거두기도 한다. 물론 많은 창업자들은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자에게 주는 관용도 남다르다. 실패의 경험도 성공을 향한 사업 운영에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본보는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 ‘미래와 열정을 가슴에 품고’ 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며 세계 첨단 시장을 누비는 한국인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은 21세기 정보통신 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인들의 현주소를 점검해보며 이들의 활약상을 총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케 될 것이다. 미래가 있는 곳에 한국인의 두뇌와 열정이 있듯이 실리콘밸리의 한인 네트워크 조성에 산실이 되고 이 곳에 진출할 한국 기업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하게 될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에 많은 성원이 기대된다. <편집자 주>
성공요인은 시장 예측과 결단력
창업 회사 대기업에 성공적 매각
슈퍼컴 기업 아프로, 크레이에 2,500만 불에 합병
기업대표에서 임원으로 탈바꿈하고 진두 지휘
하이테크 본고장인 실리콘밸리에서 하드웨어 분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하드웨어 분야에서 공을 들여오다 최근 기업을 성공리에 매각한 한인 기업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김근범씨가 운영하던 슈퍼컴퓨터 제조업체 아프로(Appro).
지난해 11월말 세계적인 슈퍼컴퓨터 업체인 크레이(Cray Inc)에 2,500만 달러 현금 매각됐다.
그의 업체가 크레이의 부속으로 들어 간 것이다. 그렇지만 김근범씨는 수석 부사장이라는 타이틀로 아프로가 운영했던 고성능 서버인 클러스터 솔루션 분야를 진두지휘하게 됐고 또한 아프로 전 직원 모두 크레이 직원으로 흡수됐다.
지난 1991년 아프로라는 기업을 실리콘밸리에 설립, 22년 만에 동종 업계의 리더에게 합병되면서 이제는 기업 운영자에서 기업 임원으로 탈바꿈한 김근범씨.
지난 20여년 기업을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희로애락을 느꼈기에 이번 자신이 키워온 기업을 매각하면서 느낀 그의 감회는 많은 것을 돌이키게 한다고 술회한다.
“직원들도 이번 합병에 만족한 표정이죠. 상장업체의 스톡옵션이나 직원 복지 혜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훨씬 좋은 조건이 제시됐기 때문이죠.”
회사명 ‘아프로(APPRO)’는 한국말 ‘앞으로’의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회사 이름에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담았다.
김씨가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을 설립하게 된 배경도 단순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8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미국 캔자스에 있는 미주리 주립대학에 유학의 길을 오게 된다.
3년 뒤 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주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아프로인터내셔널’ 회사를 설립해 사업 결행을 결심 하게 된 것.
아프로는 매각하기 전까지 슈퍼컴퓨터 개발과 시장 조사와 마케팅, 수주된 제조 물품의 최종 어셈블리만 담당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제조까지 모두 부담했었다.
제조까지 하다 보니 한때 3백명에 가까운 직원에다 한국에는 코스닥 상장업체까지 소유할 정도로 적지 않은 인력은 결국 경영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난 2000년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한 것
당시 가장 큰 고객이었던 ‘시스코’사와의 주문자부착생산(OEM) 계약이 중단되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자체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대응이 어려웠고 회사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체 브랜드가 없는 설움을 직접 뼈아프게 체험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초심으로 다시 돌아간다.
기업을 슬림화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과 좋은 경험들이 성공의 초석이 된 것이다.
각종 하드웨어를 주문자개발생산(ODM)으로 제조해 납품하는 사업을 했던 김 사장은 시스코로부터 방화벽용 서버 제조를 의뢰 받아 한때 연 6,000만달러에 이르는 매출 실적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하드웨어 ODM 수요가 줄어 결국 `남의 제품만 만들어 주는 사업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아래 직접 서버사업에 뛰어들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인텔에 맞서 서버용 프로세서 생산에 들어간 AMD와 손을 잡고 세계 최초로 AMD의 서버용 프로세서가 탑재된 서버를 생산하면서 고속 연산용 고성능컴퓨터 시장을 2001년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긴장감을 친구로 생각해야 한다”는 김 사장의 표현이 이런 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졌다.
기반을 굳힌 벤처기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프로도 1991년 창업 첫해 10여만 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이 8,000만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1억불을 바라보는 등 압축성장의 전형을 보여줬던 아프로였지만 여러 주변 환경을 고려해 기업 합병의 길을 택했다.
그가 이런 기업 매각을 하기까지에는 악전고투의 상흔이 남겨져 있었다.
김근범씨의 표현대로라면 “위기와 함께, 어렵게 위기를 넘기면서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고 내일의 불안을 쉽게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기업 생존 법칙은 무엇일까.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시장을 보는 눈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거다 싶으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과감성이다.
직원들은 그를 외유내강형의 CEO라고 평가한다.
큰 그림은 직접 그리고 세세한 업무는 부하 직원들에게 맡기는 전형적인 CEO 스타일이면서도 고객들과의 상담은 꼭 직접 챙기고 있다.
어느덧 50줄이 넘어선 김근범씨
그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이 어느 순간에는 무언가를 결단 해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차이는 다가오는 결단의 순간을 얼마나 치열하게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문이다.
그는 많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고 나름대로는 고뇌 속에 최선을 다해 임해 왔다고 술회한다.
대기업들과의 경쟁 틈바귀에서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와 더불어 미국의 3대 연구소인 샌디아 국립 연구소,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고 있을 정도로 아프로는 수퍼 컴퓨터 분야의 성공 모델로 통했다. 이런 배경들이 세계적인 업체 크레이에 인수 합병 표적인 된 것이다.
크레이는 세계 최대의 슈퍼컴 생산업체이며 한국 기상청에도 슈퍼컴을 납품한 바 있어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세일즈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고 이질적인 세계를 접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시야가 많이 넓어져 있음을 알게 됐다는 김근범씨.
“이 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사업을 진행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스스로 선택한 결단한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 결단력이야말로 그가 소유하는 최대 자산이었다.
<홍민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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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서버인 클러스터 솔루션 분야의 기린아로 부상했던 아프로사의 임직원 모두는 대기업인 크레이에 합병되면서 보다 좋은 복지 혜택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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