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19일 - 미주한인사회가 길이 기억할 날이다. 미주이민 112년 만에 한인 정치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날이다. 한인사회가 영원히 잊지 못할 또 다른 날, 1992년 4월29일 LA 폭동의 날로부터 23년, 한인사회는 정치력 부재의 뼈아픈 한을 풀고 정치력 신장의 가슴 벅찬 염원을 이뤄냈다. 19일 LA 시의원 선거에서 한인 1.5세 데이빗 류 후보가 승리했다. 제4지구 시의원으로 한인 정치인이 사상 처음 LA 시의회에 입성한다. 철옹성 같이 강고하던 시의회 문을 한인사회가 드디어 열어젖혔다.
류 후보의 당선은 ‘기적’으로 불린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도 불린다. 상대 후보 캐롤린 램지의 배후가 보통 막강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기제한으로 물러나는 탐 라본지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그의 뒤에는 라본지의 정치조직이 통째로 있었다. 에릭 가세티 LA 시장, 허브 웨슨 시의장, 개빈 뉴섬 가주 부지사 등 내로라하는 정치권력의 지지를 받으며 램지 후보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승리할 듯 보였다. 말 그대로 ‘골리앗’이었다.
류 후보의 승리는 이들 정치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당하는 약점을 거꾸로 이용한 결과였다. 스스로 무명의 신인,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기정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과 불만에 불을 지폈다. 가가호호 방문해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그는 LA 정치권에 신선한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킬 재목이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맨몸으로 부딪치는 열정과 패기가 그를 골리앗 잡는 다윗으로 만들었다.
이번 승리가 갖는 의미는 최초의 한인 LA 시의원 탄생에 그치지 않는다. 힘을 합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한인사회가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의 정신이다. 한인사회의 류 후보 지원은 3박자로 이뤄졌다. 열 일 제치고 투표소를 찾은 지역구 한인들의 표 지원, 각계각층의 정성담긴 선거기금 지원, 그리고 언론의 전폭적 보도 지원이다. 결과는 류 후보와 한인사회 모두를 놀라게 한 압승이다. 잘 해야 100표 내외의 박빙을 기대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표차는 1,600표였다.
류 당선자의 승리는 아시안 커뮤니티로 볼 때도 의미가 크다. 지난 1993년 중국계 마이클 우 전 시의원이 물러난 후 22년간 LA 시의회에는 아시안을 대변할 목소리가 없었다. LA 인구의 10%인 흑인 커뮤니티는 3명의 시의원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인구 11%인 아시안 시의원은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 공백을 류 당선자가 메우게 됨으로써 이번 선거의 의미는 범아시안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특별하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통쾌한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 선다. 류 당선자는 좋은 시의원,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해야할 새로운 과제를 앞에 놓고 있다. LA 시의원은 막대한 예산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그 힘을 오로지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쓰는 바른 정치인이 되어주기를 당부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인,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정치인, LA 시정치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는 신선한 정치인이 되어주기를 당부한다. 오늘의 감격과 감사, 겸손한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한인사회의 앞에도 새로운 과제가 놓였다. LA 한인사회의 숙원이던 ‘우리 시의원’이 정계에서 입지를 다져 큰 정치인으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는 한인커뮤니티가 아니라 제4지구 시의원이라는 사실이다. ‘아웃사이더’가 선거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지만 정계에 들어서고 나면 약점 중의 약점이 된다.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꼬투리 잡혀 정치생명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한인사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하겠다. 한인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한인 정치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류 후보의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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