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20일, 명산 라파예트를 비롯한 뉴잉글랜드 일원의 해발 4,000피트 이상 48개 고산 등산로들이 일제히 보라색으로 물결치게 된다. 그날 갑자기 제비꽃이나 라벤더가 만발하는 것이 아니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등산객들이 똑같은 시각에 48개 봉우리 정상에서 알츠하이머 극복 및 경각심 제고 캠페인을 벌인다. 보라색은 알츠하이머의 상징 색이다.
이 캠페인은 한 자원봉사단체가 2013년 시작한 연례 모금행사 ‘가장 긴 날(The Longest Day)’의 확대판이다. 연중 낮 길이가 가장 긴 하지날에 맞춰 열리는 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동틀 때부터 해질 때까지 16시간을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자기가 선호하는 운동에 할애하면서 알츠하이머 협회에 연구기금을 모아준다. 첫해에는 3만달러를 모았다.
올해 행사는 매사추세츠 등산가 맷 스틸 덕분에 더 커졌다. 그는 급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인이 7년만인 지난해 57세로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두 차례 참여한 ‘가장 긴 날’ 행사의 성과를 극대화할 요량으로 48개 등산팀이 48개 고산을 하나씩 정복한 후 정상에서 찍은 48개 사진을 한 자리에 전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놔 행사 주최 측의 동의를 얻었다.
어머니날이었던 지난 일요일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열린 태평양지역 대학연맹(Pac-12) 야구경기에서 맞붙은 애리조나 주립대와 워싱턴대학 선수들의 팔뚝에는 한결같이 ‘4MOM’(엄마를 위해)이라는 구호가 쓰여 있었다. 워싱턴대학 외야수 브래든 비숍이 치매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렇게 쓰고 출전하자 다른 선수들이 모두 따라해 비숍을 위로했다.
그보다 이틀 전 교회 한 권사님의 시어머님 장례식이 있었다. 장장 102세를 향수했지만 실제로는 87세를 사셨다. 15년은 알츠하이머에게 약탈당했다. 장남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도 몰랐다. 북한난민 출신 또순이로 이민생활의 역경을 극복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그 할머니는 문병 간 교인들에게 아기처럼 “아이아”라는 외마디 말만 연발했다.
알츠하이머는 감기와 닮은꼴이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약도 없다. 로널드 레이건, 프랭클린 루즈벨트, 윈스턴 처칠, 조셉 스탈린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들이 어이없이 희생됐다. 헐리웃 수퍼스타 찰턴 헤스턴, 찰스 브론슨, 리타 헤이워스가 그랬고, 인기가수 페리 코모와 글렌 캠벨이 그랬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말년엔 자동차가 뭔지도 몰랐다.
미국에선 71초마다 치매환자가 한명씩 늘어난다. 오는 2050년엔 환자가 현재(530만명)의 거의 3배인 1,400만명에 달할 것이란다. 금년에만 65세 이상 미국인 47만3,000명이 새로 알츠하이머에 걸린다. 지난해 환자간병에 1,570만명, 179억 시간이 소요됐다. 올해는 약 2,260억달러가 들고, 그 중 1,530억달러는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로 커버될 전망이다.
한인사회도 작년 초 충격을 받았다. 성공한 1세 한인정치인의 상징이었던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돌연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사임했다. 병 때문인지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와 돈 문제로 소송을 벌여 스타일을 구겼다.
한국에선 5월이 ‘가정의달’이지만 미국에선 ‘경로의 달’(National Older Americans Month)이다. 연방의회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헌신한 노인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보답하는 길은 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덜어주는 것이라며 치매환자들이 메디케어를 통해 일관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의 성과, 계획, 교육(HOPE) 알츠하이머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치료도, 예방도 어려워 신의 저주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치매로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리는 ‘신의 축복’도 있다. 옛날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다. 흘러간 노래를 부르면 흘러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단다. 65세 이상 한인들은 ‘신라의 달밤’ ‘나그네 설움’ ‘노란 셔츠의 사나이’ ‘돌아가는 삼각지’ ‘산장의 여인’ ‘동백 아가씨’ 등을 열심히 부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