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카 소 화이트’이후 발빠른 행보… 다양성·포용 확대
▶ ‘미나리’ 외국어영화 취급한 골든글로브는 ‘보이콧’ 확산, “인종·성차별 관행 진정한 개혁” 못하면 종말 치달을수도

아카데미상은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을 딛고 다양성을 향한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주요부문을 석권한 한국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오른쪽) 감독과 한진원 작가. [로이터]
■ 할리웃이 변한다… 아카데미·골든글로브의 미래최근 수년 간 할리웃 영화계의 화두는 다양성과 포용 정책이었다. 미투(#MeToo) 움직임이 촉발한 성평등에 대한 각성, ‘인클루전 라이더’를 외친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오스카 수상소감이 부각시킨 포용 정책, 그리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 등으로 이어지면서 ‘다양성’(Diversity)은 할리웃 영화계는 물론 미국 사회 전반에 따르고 지켜야할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포용’(Inclusion) 정책은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으면 일할 수 있는 제도적 투명성과 책임을 강조하며 보다 다양한 얼굴, 스토리 및 경험적 현실 세계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미주 한인 이민자 가정을 다룬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와 지난해 오스카 4관왕의 영예를 안은 한국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할리웃 다양성의 확대를 입증하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향방을 좌우하는 블루칩이 되었다. 한인배우 윤여정씨가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여성과 아시안, 흑인 등 유색인종 영화인들이 약진한 축제의 장이었다. 반면에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하며 홀대한 골든글로브는 주최측인 할리웃외신기자협회가 인종·성차별 논란에 휩싸이면서 진정한 개혁을 요구하는 영화계의 보이콧 행렬에 가로막혀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유서 깊은 시상식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통해 할리웃 영화계의 미래를 살펴본다.
■다양성과 포용으로 가는 아카데미상
다양성을 향한 아카데미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93회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여성 후보자 수는 2018년 최고 기록인 23명을 앞선 24명을 기록했지만, 남성 후보자의 절반에 불과했다. 지난해 아카데미가 발표한 ‘다양성 기준’은 여성, 소수인종·민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영화 제작과 홍보, 배급 등 전 과정에 비중있게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기준은 2025년 시상식부터 반영된다.
여성의 약진이 올해 아카데미상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총 70명의 여성이 76건의 후보 지명을 받아 오스카 역사상 최다를 이미 기록했고, 이날 시상식에서는 모두 15명의 여성 영화인이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17개 부문에서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가운데 여성 수상자가 가장 많은 해로 기록됐다.
오스카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 등 3개부문을 석권한 영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은 아카데미 최초로 아시아 여성으로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대기록을 썼다. 여성 오스카 감독상 배출은 2010년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감독 이후 11년만이다.
반면에 유색인종의 연기상 수상은 조연상 2개 부문에 그쳤다. 남우조연상은 1960년대 후반 일리노이를 배경으로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블랙팬서당 의장인 프레드 햄튼의 일대기를 그린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에서 열연한 흑인 배우 대니얼 컬루야가 가져갔다. 여우 조연상은 한국인 배우 윤여정씨가 수상했다.
2020년 연기상 4개 부분 모두를 백인 배우가 가져간 것과 달리 2021년에는 유색인종 배우들이 남녀 조연상을 수상했지만 남녀 주연상은 백인 배우들인 앤서니 홉킨스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차지했다. 괄목할만한 변화는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녀 주·조연상 후보로 지명된 총 20명의 배우 중 9명이 흑인이나 아시안 등 유색인종이었다.
백인남성우월주의, 인종주의 등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할리웃에 대한 비판은 지난 2015년과 2016년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명단이 백인 일색이 되자 ‘오스카는 백인 위주’(OscarSoWhite)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촉발했다. 할리웃 영화계가 이같은 불균형을 해소하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아카데미상 주최측인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성·인종·국적·관점의 차이에 따른 차별 없는 아카데미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단계별 이니셔티브를 구성해 다양성 강화 및 영화산업 내 차별적 관행과 고용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2016년부터 실행화된 1단계는 2020년까지 여성과 소수 인종 회원 비율을 두 배로 늘린다는 ‘A2020 이니셔티브’였고 2단계는 지난 2020년 발표된 미국프로듀서조합(PGA)과 협력 아래 오스카 수상자격에 다양성을 위한 새 기준을 수립하는 ‘아카데미 애피처 2025’이었다.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작품상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아카데미 포용성 기준 양식 제출해야 한다는 신설 규정을 만들었는데 여성, 인종 또는 민족 집단,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가 주·조연 배우를 비롯해 스탭진, 제작·배급 및 영화산업 전반에 비중 있는 참여를 골자로 한다. 특히 인종에 대해서 백인을 제외한 아시안, 히스패닉과 라틴계, 흑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국 인디언, 아랍, 아프리카, 하와이 태평양섬 원주민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것이 특징이다.
■인종·성차별 논란으로 비판 받는 골든 글로브
78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든글로브는 할리웃 영화계에서 보이콧이 확산되고 있다. 탐 크루즈,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를 포함한 많은 할리웃 배우들이 트로피 반납과 성명서를 통해 골든글로브에 대한 반발을 표출하고 있다. 보이콧의 이유는 매해 시상식마다 불거졌던 인종, 성차별 논란 때문이다. 워너브라더스가 할리웃 메이저 영화사 중 처음으로 골든 글로브 보이콧을 선언했고 넷플릭스, 아마존이 골든 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에 뚜렷한 변화가 있기 전까지 모든 관계를 단절할 것이라 선언했다. 워너브라더스는 성명을 통해 골든글로브의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논란 등을 지적하며 HFPA가 주관하는 행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차별의혹과 부패 스캔들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할리웃 영화사들의 보이콧에 이어 매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방영해온 NBC 방송이 2022년 시상식 중계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발표한 개혁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는데 “HFPA가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골든글로브의 내년 시상식이 존폐 갈림길에 선 것이다.
87명 회원으로만 구성된 HFPA는 그동안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재정 관리를 불투명하게 운영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올해에는 지난 2월 제78회 시상식을 앞두고 LA타임스의 보도로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HFPA가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급해 윤리 규정 위반 논란이 불거졌고, 2019-2020년 지급액만 2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2019년에는 30여명의 회원이 파라마운트 협찬을 받아 파리로 호화 외유를 떠났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여기다 인종·성차별 논란이 불거지며 골든글로브 공정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HFPA 회원 중 흑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고, 골든글로브는 올해 각종 시상식에서 호평을 받았던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해 작품, 감독, 연기상 후보에서 배제함으로써 큰 논란을 빚었다.
할리웃 영화계 전반에서 논란이 거세지자 HFPA는 최근 자체 개혁안을 부랴부랴 발표했다. 1년 이내에 회원을 20명 추가하고 향후 2년 이내에 회원 수를 50% 더 늘리겠다는 내용이었으나, 할리웃 영화계는 HFPA가 개혁 요구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골든글로브 보이콧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았고 배우들의 강한 비난과 더불어 할리웃이 HFPA를 완전히 거부한다면 골든글로브의 종말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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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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