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전략가들은 국지전으로 시작된 전투가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역전쟁 역시 이보다 더 큰 무엇인가로 진화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파트너들을 상대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교역 상대국들은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트럼프 관세에 맞설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에 미국이 10% 관세를 부과한데 대한 중국의 반응을 눈여겨 보라. 미국의 관세에 맞서 베이징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와 원유에 각각 15%와 10%, 농기계와 특정 차량에 일률적으로 10%의 보복관세를 매겼다. 또한 반독점법 위반혐의를 받는 구글과 엔비디아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고 같은 혐의로 인텔과 애플도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다.
규제 보복은 새로 열린 여러 개의 전선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공격적인 미국의 관세에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고 운영되는 기술이 대부분 글로벌 상거래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정치학자인 헨리 파렐고 에이브러햄 뉴먼이 2023년에 공동저술한 ‘지하 제국(Underground Empire)’에서 살펴보았듯 9/11 이래 미국은 국가안보 등의 목적으로 광케이블 네트워크와 국가간 대금지급 프로세서를 포함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교역 기반 시스템을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여기에 속한 한 가지 본보기가 SWIFT라는 약자로 더욱 잘 알려진 국제은행간통신협회다. 2021년 현재, SWIFT는 세계 금융기관들 사이에서 연간 140조 달러 이상의 자금 이동을 촉진하면서 국가간 거래의 절반 이상을 처리했다. SWIFT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에 힘입어 워싱턴은 우크라이나전 초반기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효과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러시아 은행은 SWIFT와의 연결이 끊겼다. 전쟁 전에 대체시스템을 구축한 러시아는 피해를 일부 완화할 수 있었지만 은행들은 외부세계와의 접근이 대부분 차단됐다.
이제 SWIFT의 플레이북을 준수해온 다른 국가들도 이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관세전쟁으로 타격이 불가피한 교역국들은 그들의 계획을 추진하는데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만든 국제기구인 BRIC의 순번제 회장국이다. 러시아는 회장국을 맡는 기간에 SWIFT의 라이벌에 해당하는 이른바 BRICS Bridge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띄울 계획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 노출된 국가들은 SWIFT 대체시스템을 채택하러는 유혹에 말려들기 쉽다.
외국 정부들이 그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 보유고를 축소하는 것 역시 관세 전장을 확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11월 현재, 외국 정부와 기업은 8.6조 달러의 국채를 손에 쥐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자산을 제외한 투자자 보유 부채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 외국 정부와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 규모는 일본(1.1조 달러), 영국(7,700억 달러), 중국(7,700억 달러) 순이다.
관세협상이 장기적 충돌로 귀결될 경우 미국의 국채시장은 상대국들의 농익은 표적이 된다. 미국의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매각하면 자본손실이 발생하지만 외국정부는 이를 감수해가며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해외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채 가운데 단 10%만 매각한다 해도 미국은 당장 8,600억 달러의 국채를 사들일 대체 매입자들을 필요로 한다. 8,600억 달러는 2024년도 연방적자인 2조 달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또한 2025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의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3 정도로 이들 모두 재융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외국 공식 채권자들의 보유자산 처분에 따른 추가 압력이 보태지면 국채 이자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교역과 대출에서 달러화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2022년 한 해동안 전세계 대외무역 청구서의 절반 이상과 국제 부채의 64%가 달러화로 표기됐다. 2010년에 비해 15%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이처럼 세계의 주된 준비통화라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달러화는 미국에 차입비용 축소를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현실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중국은 이미 달러화에서 렌민비로 무역 결제통화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은 2023년 브라질 및 아르헨티나와 달러화를 그들의 중개통화로 대체하는 대신 중국과의 교역 대금을 렌민비로 표기하는데 합의했다. 같은 해 중국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7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는데 이는 사우디가 달러화 결제 교역 방식에서 더 멀리 이동할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이다.
비록 미국이 이번 무역전쟁에서 첫 총격을 가하긴 했지만 새로운 전선이 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디서 다툼이 일어날지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트럼프의 관세폭탄 투하로 시작된 무역전쟁에서 미국 이외의 나라들이 잃을 것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정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국가건 무역전쟁에서 홀로 태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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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R. 오스자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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