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기를 기억하느냐며 반갑다고 했다. 앨리슨이라는 이름이 퍼뜩 기억나지 않아 프로필 사진을 눌러 작은 사진을 확대해 본다. 고등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백인 친구였다.
기억난다고 나도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기는 아직 캔자스 시티에서 살며 타투이스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친구에게서 사진 한 장이 날라 왔다.
발등이 찍힌 사진인데 한글로 앨리슨이라는 타투가 새겨 있었다. 반가운 한글 타투를 보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이거 네가 써준 거야. 사진을 확대해 자세히 보니 익숙한 글씨체다. 내가 써준 한글 이름이 예뻐서 타투를 시작하고 자기 발등에 새겼다고 한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던 2003년만 해도 미국 중부의 시골 마을, 캔자스 시티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이도 많았다. 한국을 알더라도 북한이냐, 남한이냐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동양인이 극히 적었던 곳이라 나는 그들 눈에 신기한 대상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소했던 그들에게 나는 한국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학교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컬처럴 데이에는 한국에서 한복을 배송받아 만두와 김치 등을 어렵게 구해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주곤 했는데 앨리슨은 그걸 가지고 있다가 자기 몸에 타투로 새긴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정성스럽게 적어줄 것을 그랬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모르던 친구들이 이제는 케이팝, 케이뷰티에 열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글로 쓰인 문학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이제는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다.
여느 미국 마트에 가도 손쉽게 김치와 라면을 살 수 있다. 어느 미국 마트에서 출시된 냉동 김밥이 줄 서서 사 먹는 인기 제품이 되는 것도 보았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를 보고 공기 놀이를 하는 외국인들을 만난다. 어딜 가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접받는 시대가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늘 큰 아이가 다니는 한국학교에서는 삼일절을 맞이하여 체육대회가 열렸다. 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도 아이와 함께 참석했다. 조회를 마치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더니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큰 딸은 이미 가슴에 손을 얹더니 태극기를 향해 각을 잡고 서 있다. 많이 해본 솜씨다. 애국가도 제법 잘 따라 부른다.
이어서 국민 체조가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 이후 처음 들어 보는 국민 체조 구령 소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동작들은 몸에 각인이 되었는지 하나도 안 잊고 저절로 팔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도 옆에서 힘찬 구령 소리에 맞춰 체조를 따라 했다.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줄다리기, 2인 3각 경기, 과자 따먹기 등의 게임을 하고 간단히 삼일절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작은 태극기를 각자에게 나눠 주셨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삼일만세운동을 재현해 보았다.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뛰라고 하니 신나서 고사리 같은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며 뛰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유관순 열사가 내 딸보다 조금 더 컸을 때 목숨을 걸고 외친 대한독립만세의 뜻을 이 아이들은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
선조들의 피땀으로 일군 나라가 이렇게 성장하여 그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고 온 세계에 한국인이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이민자로 이 미국 땅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민족이 이제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 문화대국이 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목숨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위인은 못되지만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로 이렇게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한국의 뿌리를 알려주는 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삼일절이 저물어가는 지금, 나도 마음속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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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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