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욘 포세(Jon Fosse)는 출생과 죽음을 <아침, 그리고 저녁(Morgon og Kveld)>으로 표현했다. 노르웨이 서부 해안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신언어인 뉘노르스크어로 작품 쓰기를 고집한다고 한다. 그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 한글 번역본은 주로 독일어 번역본을 재번역한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피오르를 배경으로 장대비, 바람, 바다, 외딴 집을 자주 등장시킨다. 거의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문장은 구어체의 리듬감을 가지며 독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제공한다. 작가는 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는데, 그 기억이 후일 그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특히 북유럽에서 주는 상을 많이 받았으며, 2023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아침, 즉 출생을 나타낸다.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날의 장면이다. 어부로 살아가는 올라이는 전율을 느낄 만큼 무한한 기대와 행복한 감정으로 아이의 출생을 기다린다. 일생 동안 겪는 일 중 가장 힘든 싸움을 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날 아기가 안쓰럽다. 그는 아이가 아들이길 바라며, 태어날 아이의 존재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한다. ‘사람은 그 근원인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혼자가 된다. 삶은 늘 혼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무에서 무로.’
올라이는 아내가 출산 도중 잘못될까 봐 초조해한다. 그는 신을 굳게 믿은 적은 없지만, ‘신은 존재한다.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을 뿐, 신은 모든 사람 안에 존재한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어쩔 수 없이 어부의 삶을 살아갈 아들에게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2부는 저녁, 즉 사망을 나타낸다.
요한네스의 영혼은 이미 자기 몸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일어나려 한다. 몸이 너무 가볍다.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이상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기분 좋게 따뜻하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아 보이지만, 무언가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페테르가 보인다. 어린 시절 짝사랑했으나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도 있다. 오래전 지나간 일들이 마치 현실처럼 보인다. 부인 에르나가 집 앞에 마중 나와 있지만, 그녀의 손이 차갑다. 집에 들어서며 돌아보니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어디까지가 실체인지,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다.
막내딸 싱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온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딸이 그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간다. 지나가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동시에 싱네 역시 무언가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고 느끼며 섬뜩한 기분에 휩싸인다.
친구 페테르가 다가와 이제 자네도 죽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친한 친구로서 저세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요한네스는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생생한데, 예전 일들도 또렷한데, 자신이 죽었다니. 그는 친구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는가? 목적지가 없는가? 위험한가? 아픈가? 영혼은? 좋은가, 그곳은? 먼저 떠난 아내도 있는가?’ 수많은 질문에 친구는 하나씩 대답해 준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경험한다. 바다와 구름과 바람이 하나가 되고, 모든 것, 빛과 물이 하나가 된다. 그곳에는 먼저 간 아내가 서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동시에 서로 다르다. 차이가 없으면서도 저마다의 존재가 있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요한네스는 몸을 돌려 뒤를 본다. 자신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딸은 땅에 묻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운명에 따라, 혹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죽음이라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작가는 죽음을 자연스럽고도 담담하게 그려낸다. 어릴 적 빈사 상태에서 경험한 죽음에 대한 느낌이 그의 글에 스며든 것일지도 모른다. 신비롭고 두렵고, 알 수 없으나 피할 수도 없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평온하다. 작가가 그려낸 그곳의 모습이 좋고, 또 그러기를 바라면서도 내 입속에는 같은 말이 맴돈다.
‘좋은가, 그곳은?’
<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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