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법까지 동원해 범죄경력 없고 합법적인 체류자까지 마구잡이 추방
▶ 법원의 추방 중단 명령도 무시… “입법·사법부를 행정부에 종속시키려 해”
▶ ‘친팔 시위’ 참가 유학생 대거 비자 취소… ‘DEI 정책’ 대학에 지원금 중단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출범 이후 시행 중인 강경한 이민 정책과, 진보 담론을 억누르려는 이른바 '문화전쟁'은 미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대립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불법 이민자 단속·추방 작전을 마구잡이로 벌이면서 미국 사회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온 합법적인 이민자들까지 불안에 떨게 했다.
또 이런 이민 정책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반발하면서 사법부와 행정부의 정면 대결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주요 대학들을 겨냥한 문화전쟁은 학문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로, 다양성과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화가 그동안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멜팅팟'(Melting pot·다양한 사람과 사상 등이 뒤섞여 하나를 이룬 사회라는 의미)이라는 미국의 특징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 초강경 이민정책…'18세기 법'까지 적용해 추방에 활용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1·5 대선 때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펼치겠다고 공약했으며, 연간 추방 목표를 100만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불법 이민 단속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 중 하나로 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합법적인 지위가 없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추방 작전에 나섰다. 주로 범죄 경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가 단속 대상이라고 밝혔지만, 아무런 범죄 사실이 없지만 검거 현장에 함께 있다가 적발돼 체포된 불법 이민자들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전쟁과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일시 체류를 허용한 90만여명의 무비자 입국자에 대해서도 체류 허가를 취소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조치에 착수했다.
특히 이민자 추방에 군대까지 동원해 미군은 불법 체류자를 항공편에 태워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파나마, 에콰도르, 페루, 인도로 보냈으며, 테러 용의자를 수용했던 쿠바 관타나모 해군 기지 구금시설을 추방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쓰기도 했다.
미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지난 석 달간 체포한 불법 이민자 수가 14만5천명으로, 지난 2024년 회계연도 전체 체포 인원인 11만3천명을 크게 넘어섰다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18세기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EA)을 적용해 베네수엘라 국적자 약 300명을 베네수엘라의 갱단인 '트렌 데 아라과'(TDA) 조직원으로 규정하고 엘살바도르로 추방하기도 했다. AEA는 전시에 적국 국민을 신속하게 추방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추방된 이들 중 일부는 범죄 조직과 무관하거나 합법 체류자로 확인되면서 이민자들에 대한 '마구잡이식 추방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난달 합법적으로 체류 중이던 엘살바도르 출신 남성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추방해 본국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보낸 뒤 가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미 법무부가 "행정상의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 잇단 법원 제동에 사법부-행정부 대립 격화
미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리한 이민자 추방 정책에 잇달아 제동을 걸었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적성국 국민법 등을 근거로 한 베네수엘라 국적자 추방 조치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고 엘살바도르 정부와 미리 협의해둔 계획에 따라 추방 대상자들을 엘살바도르의 감옥에 수감시켰다.
이에 보스버그 판사는 "헌법은 행정부 당국자들에 의한 고의적인 사법 명령 불복종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향후 당국자들이 법정모욕 혐의로 기소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나서 보스버그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공격했고, 이에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이 사안 외에도 미국의 각급 법원들은 '출생 시민권'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게 한 행정명령 등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조치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번번이 무시하며 따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헌법의 근간인 삼권분립마저도 뒤흔든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해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강력한 행정부 아래 사법부와 입법부를 종속시키려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향해 간다고 비판했다.
◇ 교수·유학생까지 추방…학문·사상의 자유 침범 논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 정책은 대학까지 파고들었다.
특히 대학 내 '반(反)유대주의' 척결을 내걸고 친팔레스타인 시위 등에 참여한 유학생들의 비자를 대거 취소했다.
지난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캠퍼스 내에 "미치광이들"이 있다면서 국무부가 300명이 넘는 유학생의 체류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CNN 방송은 해당 유학생들의 소송과 각 학교 측의 발표 등을 토대로 이달 중순 기준 90여 개 대학의 유학생과 교수진, 연구원 등 600명 이상이 비자를 취소당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 지역 언론에 따르면 휴스턴대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던 한국인이 돌연 비자 취소로 강의를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학생 비자로 머무는 유학생뿐 아니라 영주권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뉴욕 컬럼비아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앞장선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을 체포해 추방 절차를 밟기도 했다. 칼릴은 영주권을 취득한 신분이었는데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추방 대상이 됐다.
이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들에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 폐지, 입학 규정 변경 등 교내 정책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학들이 학문·사상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이를 거부하자 대학에 부여하는 보조금 동결과 면세 지위 박탈을 선언했다.
대학들을 상대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문화전쟁에 대해 일각에선 미국 사회 곳곳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좌파 엘리트'의 본산을 무너뜨리겠다는 '이념전쟁'의 일환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금 중단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미 전역의 대학 총장 220여명은 지난 22일 트럼프 행정부를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은 연방 정부의 과도하고 정치적인 개입이 "미국 교육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고등교육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의 대가는 우리 학생들과 사회가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소수자 보호·다양성 정책 폐기…'자유' 가치 흔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기존의 민주당 정부에서 시행된 소수자·다양성 포용 정책과 진보적인 가치를 모두 배척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에는 오직 2개의 성별, 남성과 여성만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성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못 박았다.
그 직후 바이든 정부의 DEI(다양성·평등성·포용성) 정책을 전면 폐기해 관련 부서 공무원들을 해고하고, 이 정책과 관련된 연방 기관 지원금·계약을 모두 취소했다.
지난 2월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을 여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하계 올림픽 때 성전환 선수에게 입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교육부가 워크(woke·진보적 가치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용어)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한다고 비난하며 교육부 폐지를 지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런 이념 탄압과 다양성 말살 조치가 미국의 근간인 자유의 가치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프랑스의 중도좌파 정당 '플라스 퓌블리크' 소속인 라파엘 글뤽스만 의원은 지난 16일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 건국 100주년 때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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