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된 연저육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 요리사: 시즌 2>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100인이 흑과 백으로 나뉘어 요리 경쟁을 벌이는 현장을 담았다. 시청자가 직접 맛볼 수 없다는 시청각 프로그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의 미감까지 사로잡은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중이다. 한 예로 최근 다녀온 연말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는데 그 자리에 함께한 어른 모두가 그 뉘앙스를 알아듣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오늘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신 여러분들, (잠시 뜸을 들인 후) 생존하셨습니다.”
이는 안성재, 백종원 심사위원의 어투를 흉내 낸 표현으로 ‘요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듣게 되는 심사 문장이다. 그때였다. 함께 자리한 아이가 의문을 가진 건.
“엄마, 왜 그렇게 말해?” 허를 찌르는 아이의 질문에 멈칫했다. 아이는 맛있는 밥을 나누어 먹는 식사 자리에서 생존을 논하는 어른의 표현이 어색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게 요즘 유행하는 말이야’라고 얼버무렸지만 아이의 질문이 던진 파장은 적지 않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행위이며, 그것이 곧 함께 살아가는 ‘살림’이라고 믿어왔던 나였기에 일반 식사 자리에서는 ‘생존’이라는 표현에 주의가 필요함을 곧장 알아차렸다.
머지않아 그 파장은 불편함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안에서 보이는 ‘생존만을 위한 일회성 구조의 경쟁’과 ‘지나온 삶과 분리된 평가’였다. 요리가 삶을 이어가기 위한 살림의 행위가 아니라 다음을 남기지 않고 지금 소진해야 하는 것처럼 다뤄진 것이 이제야 불편했다. 그러나 나는 뒤늦게 찾아온 불편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숨은 요리 고수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숨은 요리 소수를 만날 때마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왔나며 앞으로는 탈락 없고 평가도 없는 곳에서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열렬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연저육찜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진경 셰프
물론 숨은 요리 고수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요리사’라는 칭찬을 수없이 듣지만 항상 겸손한 김진경 셰프는 내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직접 만난 손에 꼽는 요리 고수다. 지난 10월, 김진경 셰프의 공간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오직 축적된 시간만이 존재한 그곳에서 연저육찜을 함께 만들었다.
조선 후기 등장하는 궁중 기록에는 연저육찜을 ‘연저증(軟猪蒸)’으로 표현한다. 연저(軟猪)는 말 그대로 연한 돼지고기를 뜻하고 증(蒸)은 찜의 조리방식법을 뜻한다. 1902년 11월 중화전(中和殿) 진연(進宴)에서 고종이 받은 ‘별행과(別行果)’ 상차림에 이 연저증이 포함되어 있는데 <임인진연의궤>에 적힌 ‘연저증 1그릇’ 재료에는 진계, 해삼, 전복, 표고, 계란까지 들어간다. 이 차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통삼겹 간장조림의 이미지보다 연회용 고급 복합 찜에 가깝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며 조리 기술과 구성의 변형이 생긴 듯싶다.

삶아서 구운 돼지고기를 조리는 과정
왕과 왕실을 위한 최고급 궁중 요리로써 요리사의 실력과 정성이 드러나는 상징적 요리로 자리를 잡아온 연저증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 요리 실력을 겨루는 연회의 장면에 연저육찜으로 등장한다. 연한 돼지고기 찜을 만들기 위해 돼지고기를 삶고, 기름에 굽고, 또 양념에 졸이는 삼단계 조리 과정을 거치며 인삼, 호두, 은행, 무화과, 대추 등 진귀한 식재료를 곁들여 낸다. 조리시간이 각기 다른 식재료들을 알맞게 익혀 완벽한 ‘익힘 정도’를 구현해야 하는 난이도 상의 요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귀한 요리를 완성하기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요리에 몰두한 김진경 셰프의 시연 중, 자리에 함께한 사라 선생님께서 대화를 이어갔다.
“이게 다 아름다운 추억이야.”
정말 그랬다. 우리는 맛있는 요리가 익어가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한 시간에 머물며 추억을 쌓고 있었다. 돼지고기는 껍질이 붙어있는 통삼겹살로 99 Ranch에서, 신선한 야채는 교포마켓에서 구매했다는 정보를 시작으로, 한국 식재료 구매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 정보와 최근 새로 생긴 한인 마트에 직접 다녀온 소감을 나눴다. 미국에 처음 와서 한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는 당시 한국에서부터 구매해 들고 온 장선용 선생님의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 책>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서로 나서서 고백했다. 그 순간 요리가 ‘살림’이 될 때 무엇이 남는지를 깨달았다.
이런 온화한 대화들 속에서 삶고, 굽고, 조리는 과정에 참여하며 ‘요리 경쟁’이 아닌 ‘요리 경제’와 ‘요리 경영’을 경험했다. 식재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지를 살피는 요리 경제와 맛있는 한 끼 식사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요리 경영을 통해 삶을 운영하는 방식을 배운 것이다.
김진경 셰프에게 요리 비결을 묻자 그녀는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윤숙자 교수님께 3년, <철든 부엌>을 운영하는 노영희 푸드 스타일리스트님께 1년간 배우며 쌓았던 경험이 자신의 요리 인생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답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이유도 고집스러운 배움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김진경 셰프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자신이 배워온 것들을 지역 사회 커뮤니티와 나누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작은 공간을 꾸려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는 지역 주민들을 초대해 맛있는 밥 한 끼를 대접하는 장소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요리 대회에서 입상하여 미국 대사관으로 파견근무를 나오게 된 김진경 셰프는 그 누구보다 요리 경쟁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요리를 살림으로 받아들였고, 앞으로 그 다짐을 커뮤니티를 위해 남겨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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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셰프의 연저육찜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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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통삼겹살 1kg, 수삼 3 뿌리, 무화과 50g, 대추 5개, 은행 10알, 호두 20g, 대파 1대, 마늘 5톨, 생강 1톨, 조림장(간장 1컵, 물 1컵, 조청 ½ 컵, 설탕 1/2컵, 실파 1 뿌리, 마늘 5톨, 생강 1톨, 마른 고추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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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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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돼지고기는 덩어리째 대파, 마늘, 생강과 함께 끓는 물에 넣어 약 20분간 삶는다.
2. 무화과를 물에 30분 정도 불린다.
3. 인삼을 깨끗이 씻어 뇌관을 자른다.
4. 대추는 돌려 깎아 씨를 뺀다.
5.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삶은 돼지고기의 사면을 노릇하게 뒤집어 가며 지진 후 기름을 조금만 남기고 따라낸다.
6. 5에 조림장 재료를 전부 넣고 끓인다.
7. 5가 끓으면 불린 무화과, 인삼, 대추를 넣고, 아주 약한 불에서 양념장을 끼얹어가며 조린다.
8. 20분쯤 조린 후 무화과, 수삼, 대추는 건져놓고, 돼지고기는 10분 정도 더 조린다.
9. 돼지고기를 꺼내 썰어 담고 무화과, 수삼, 대추를 옆에 곁들인다.
10. 은행은 볶고 호두는 뜨거운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뒤 고명으로 쓴다.
참고: 재료 중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인 무화과와 은행은 생략해도 좋다. 두부를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서 노릇하게 구운 후 조림장에 같이 조려내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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