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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 아침의 시

허문영(1954~) ‘빨려 들어가는 먼지를 생각함’
세상은 빨고 빨리는 것의 힘겨루기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진공청소기의 파워를 최대로 하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장롱 밑의 오래된 먼지처럼 숨죽인 내 영혼도 빨아들이고 온 집안에…
[2006-06-23]
강우식 ‘노인일기2(장모상)’
장모 이 아무개 여사는 85세까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 외아들도 시집간 두 딸도 나름대로 모시지 못한 까닭이 있겠지만 나는 장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본다. 불효스럽게도 딸들은…
[2006-06-23]
김영교(1940 - )‘개나리’
살얼음 집어넣고 우표 붙여 겨울다리 건너로 띄우면 속달로 날아온 햇살 네 볼을 만진다 봄이 아, 터지는 소리 네가 받아 열어볼 그 때쯤 …
[2006-06-23]
고은(1933- )‘흰쥐’
분홍빛 발이 떨고 있다. 오늘 너는 그동안의 실험으로 암에 걸린 것이 밝혀졌다. 오늘 너는 그동안의 몇 차례 실험으로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 밝혀졌다. 틀림없…
[2006-06-23]
최석봉(1937- ) ‘선서’
20년 전 오른손 쳐든 채 미국 시민권 선서하던 날 왼손에 들었던 성조기 높다랗게 펄럭이고 반쪽 낮달이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하늘엔 줄 끊긴 연…
[2006-06-23]
반칠환 ‘해일’
고윤숙 달의 인력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울어서 넘치는 것이다 발목이 젖는 게 두려운 사람들아 제 눈물에 저를 담그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라 조석간만이 아니…
[2006-06-23]
김지하(1941 - )‘공경’
미류나무 위는 하늘 하늘 끝은 미류나무 높은 데 올라서야 산 높은 것을 아는 법 내 가슴이여 여인을 보고 어린이 앞에 뛰어라 가슴이여 …
[2006-06-23]
김남조(1927 - )‘희망학습’
총탄이 몸에 명중했다 살을 꿰뚫는 얼음번개의 얼얼한 상처, 한데 죽지 않았다 머리에 총 맞지 않았으니 아직 살아 있고 생각하는 일 가능하리라 가슴에 총 …
[2006-06-23]
박남준 ‘각’
함철훈 칼을 들고 목각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나무가 몸 안에서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 촘촘히 햇빛을 모아 짜 넣던 시간들이 한 몸을 이루며 이쪽과 저쪽 밀고…
[2006-06-23]
나종영 ‘메꽃을 위하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풀숲에 몸을 낮추어 피어 있는 너를 보면서야 알았다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일이 어쩌면 서…
[2006-06-23]
고대진 ‘DNA 2 유전자 전쟁’
저녁을 먹다 새로 파마한 아내의 머리에 눈길이 멈춘다. 알아? 사람의 유전자가 배추의 유전자와 50% 이상이나 같다는 걸? 왜 파마머리가 배추같이 보이는지 알 것 같아. 신 김치…
[2006-06-23]
김종철 ‘위급’
요즘은 어디에서나 천사들이 보입니다 하늘에는 새들보다 낯선 천사들이 더 많이 날아다닙니다 사람이나 개보다 천사가 많은 세상 어쩌면 집집마다 기도보다 이마에 붉은 띠를…
[2006-06-23]
김종해 ‘아직도 사람은 순수하다’
죽을 때까지 사람은 땅을 제 것인 것처럼 사고 팔지만 하늘을 사들이거나 팔려고 내놓지 않는다 하늘을 손대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아직 순수하다 하늘에 깔…
[2006-06-23]
오동춘 ‘당신은 가정의 등불’
당신은 사랑 생명이란 말 한마디도 가족이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는 정말 가정을 바로 지키는 행복의 등불입니다 당신이 세운 창 울타리는 너무도 엄격합니다 …
[2006-06-23]
문정희 ‘어린이날에’
별 내음 나고 달 내음 나는 우리 새끼들아 엠파이어스테이트보다 더 높은 집에서 나이아가라보다 더 큰 목청으로 자유의 종 따위보다 더 뜨거이 우는 에밀레……
[2006-06-23]
오세영 ‘어머니’
나의 일곱 살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몸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시는, 나의 열네 살적 어머니는 연분홍 봉선화 꽃이셨다. 저무는 여름 …
[2006-06-23]
엄기원 ‘행복’
엄마가 말했어요, 내가 잠 잘 자는 거 반찬 투정 안 하고 아무거나 잘 먹는 거 동네 아이들과 뜀박질하며 잘 노는 거 이게 행복이래요. 아…
[2006-06-23]
윤동재 ‘대통령 예수’
교회 집사라는 직분은 일찍부터 맡았지만 글을 모르다 보니 성경을 읽을 줄도 모릅니다. 성경 이야기 가운데 알고 있는 것은 귀로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든 성경은…
[2006-06-23]
안도현 ‘강’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
[2006-06-23]
고 훈 ‘뿌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움도 추함도 드러나지 않아 누구와 견주지 않아도 좋을 내 무한한 영토 서둘지…
[200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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