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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
지난 97년 10월말 아시아 통화위기의 태풍이 북상하며 홍콩 증시가 폭락하고, 그 여파가 지구촌을 돌아 뉴욕 증시도 폭락했다.
다음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은 강하다"며 투자자들을 독려했다. 그 순간 뉴욕 증시는 기적과 같이 상승, 폭락한 만큼 회복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정부와 금융시장 사이에 신뢰가 있었다.
5년 후인 지금 뉴욕 증시가 또다시 연일 폭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앨라배마주에서 "미국 경제의 기초여건은 강하다"고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목소리가 방송을 탄 후, 다우존스 지수는 440 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다.
지난 9일 부시 대통령이 뉴욕에 와서 기업 회계 투명성 방안을 선언한 후 15일 연설때까지 다우존스 지수는 무려 1,000 포인트나 폭락했다. 시장이 미국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가을 테러로 뉴욕 월가가 잿더미로 변했을 때 테러 세력을 토벌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목소리만 들어도 뉴욕 증시가 올라가던 때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뉴욕 증시 폭락장세는 기업과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신뢰의 위기에서 연유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신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과거 전력이 회계 스캔들의 와중에 휩쓸려 있고, 기업 개혁 프로그램이 유연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80년대말 석유회사 하켄 에너지에 근무할 때 스톡옵션을 지급받기 위해 시중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사내 대출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투자가 감시단체가 체니 부통령이 에너지 회사 핼리버튼
의 회장 재직시 회계부정을 눈감아준 의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폴 오닐 재무장관과 하비 피트 증권거래위원장(SEC)이 시장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마저 지난해 11차례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정책 수단을 거의 다 소모했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대한 행정부의 리더십이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뉴욕 월가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경제팀이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시절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존 맥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피트 SEC 위원장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며, 부시 대통령의 기업 부정 척결방안보다 강력한 민주당의 회계개혁법안의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피트 위원장의 친 기업적인 금융규제 정책이 현재의 기업 범죄를 가중시켰다며 피트 위원장의 사퇴가 개혁의 첫단계라고 주장했다.
폴 오닐 재무장관은 지난달 미국 달러화가 급락하고 있을 때 한달동안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록 가수 보노와 함께 광대모자를 쓰고 가난 구제에 관한 논쟁을 벌여 비웃음을 샀다.
금융시장 안정에 정부의 신뢰와 정치 안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 90년대에 일본 금융시장이 무너지는 과정에 내각의 개혁 조치가 정치권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금융위기도 정치 불안으로 정부가 해외투자자들의 불신을 사면서 가중되고 있다.
한국은 5년전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해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다시 찾게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또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젠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에 몰아치고 있다. 과천의 경제부처들이 지난번 권력 이양기의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 중요 현안을 여당과 야당에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이 해외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쟁이 격화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지만, 한국 정치인들은 경제분야만큼은 정부의 신뢰가 유지되도록 양보해야 할 것이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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