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12)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골동품의 3대 요소(연륜, 희소성, 예술성) 가운데 하나가 예술성이다. 골동품 즉 고미술을 평가하는데 마지막 관문이 바로 그 골동품이 가지는 예술성이다. 골동품은 신품의 반대 개념인 중고품이나 구닥다리가 아니다. 그러나 예술성이 결핍된 골동품은 고미술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술성을 어떤 차원에서 풀이하더라도 아름다움이야말로 예술성의 으뜸가는 요소라 할 것이다.
■별난 것 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초기 아마추어 골동 수집가 대부분이 골동품을 수집하는데 있어서 ‘미(美)’ 보다는 ‘별난 것’을 찾아 헤매는 경향이 많다. 이상하고 괴상하게 생긴, 그러니까 보편이 아닌 특출한 물건을 선호한다.그런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골동품 하면 보기 드문 별난 세계의 별난 물건이라
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골동품이 가지는 희소성을 희한한 성질로 이해하려는데 있다.
이것은 착각이요, 오류다. 골동품이 말하는 희소성은 귀하고 한정된 물건이라는 뜻이다. 골동품은 재생산이 불가능한, 지극히 제한된 문화유산이면서 일반 물건이 가지는 속성과 같이 세월이 유수같이 흐르면서 깨지고 닳아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시할머니에서 시어머니로 이어 내려온 부뚜막의 조선백자 정한수 그릇도 전도사 며느리로 이어가는 즉시 귀신단지라는 선고를 받고 박살이 나기 마련이다.
재생산이 불가능하고, 때문에 희소가치가 극대화 되어감에 따라, 별나고 특출한 물건이라는 부가가치가 누적돼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서 여기에 치우친 나머지 고미술 고유의 예술성이 무시되면 수집은 단기에 끝나고 실패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하면 수집 대상을 오직 내가 좋아하는 주관적 가치(별난 가치)에 둔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수집을 취미에서 소장(대량 수집)으로, 그리고 시장 유통까지 바라볼 때 골동시장은 8대2의 비율로 유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로 별난 것을 찾는 고객이 2라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객은 8이라는 뜻이다.
■수집품의 통일성을
이름하여 골동품 하면 무엇이든 좋다는 식의 수집 태도는 ‘나는 넝마쟁이요’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사람이 즐겨 쓰는 말 가운데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전문 수집가의 귀에는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골동품 하면 아무거라도 닥치는대로 수집한다는 발상에서 도자기, 불상, 장롱, 절구통, 맷돌까지 진열해 놓는다면 이것은 수집이 아니라 장(시장바닥)을 벌리는 일이다. 여기에다 인디언 토기까지 갖다 놓는다면 이것은 바로 국제 골동시장이다.
내 말에 오해 없기 바란다. 몇 차례에 걸쳐 골동 수집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골동 초보자를 위한 골동 입문 지침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아마추어적 골동수집 훈련을 거쳐 프로로 성장하여 골동시장에서 자신의 소장품이 최대의 투자 가치를 창출해 내도록 하는데 있다. 골동 만물상을 벌리는 일은 한참 내일의 문제이다.
일단 수집하고자 하는 대상이 결정되면 이 물건에 대한 수직적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수집 태도이다. “도자기를 수집한다” 이 말처럼 수집 세계에서 막연한 말이 없다. 도자기의 범위는 태평양 보다도 넓다. 그러나 “도자기 가운데 분청사기를 수집한다” 이 범위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본다. 이것도 넓다. 초기 수집가는 바다도 호수 아닌 ‘우물’을 파야 한다. 조선 자기 가운데 분청사기, 그 중에서 ‘사발’, 이런 식으로 좁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여기 저기 지저분하게 쑤셔대지 말고 한 우물을 파고 들어야 한다. 마음에 와 닿는 분야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하나, 아니면 두 종류를 선별하여 파고 들 때 다른 종목 열 가지 스무가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한 우물을 파고 들어가면서 쌓이고 얻어지는 자신감은 조강지처에 대한 믿음과 같다. 바람을 피우면서도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존재, 외도를 하면서도 용서를 구하고 싶은 존재,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천근같은 무게로 사내를 지탱해 주는 존재, 이것이 바로 조강지처요, 골동품이 가지는 속성인 것이다.
마음에 와 닿는 골동품(도자기),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먼저 종적(같은 종류), 그리고 여기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가지고 횡적(다른 종류)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거기에서 수집의 진국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골동품은 최고의 투자가치로 응답해 올 것이다.
기왕에 한국 골동 도자기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독자들은 한번 분청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한국 도자기 가운데 유일하게 ‘사기’라는 표기를 붙여 사용하는 도자기가 바로 ‘분청사기’다. 학자들 가운데는 분청자기라고 호칭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역시 ‘분청사기’라 불러야 제격이다.
한국사람 뿐 아니라 외국인이 더 야단들이다. 가장 자연적이고 한국적인 도자기가 바로 분청사기라고. 분청사기 가운데 ‘덤벙분청사기’라는 것이다. 백토죽물을 황소 여물통 같은 곳에 부어놓고 거기에 맨살 사기그릇을 덤벙 담궜다 시나부로 건져낸다. 굳이 정성스레 담굴 필요도 없고, 건질 필요도 없다. 흘러내리는 백토물 줄기를 굳이 훑어낼 것도 없다. 원래 격식이나 규격이 없는 덤벙 작업이다.
이렇게 백토죽물을 뒤집어 쓰고 가마속에 들어갔다 나온다. 아마 지구상에서 이렇게 소박하면서 투박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도자기는 분청사기 빼고는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분청사기가 발산하는 독특한 체취는 한국 도자기 문화를 미국속에 대중화 시키는 마당쇠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내리라 믿는다.
백십여개 민족이 더불어 사는 미국사회이다. 이렇게 다민족이 모여 사는 복합사회에서 유별난 민족문화는 대중사회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다. 골동 노점시장의 생태계는 지구상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도 똑 같다.
재벌에서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즐겁고 편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찾는 곳이 바로 골동 노점시장이다. 미국 대중문화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대중문화권에 한국의 소박한 서민문화를 소개할 때 아주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문화권에서 한국 문화는 아직까지 생소하다.
이런 토양 위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거창한 예술단을 끌고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에 오르는 것 보다는 우리 동포 청소년 ‘사물놀이패’들이 지신 밟고 돌아가는 모습이야말로 다민족 미국 대중문화 속에 한국문화 정서를 소개하고 더불어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일등공신이 아닌가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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