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부와 명예가 꿈틀거리는 아메리카 드림의 본거지로 불린다.
온갖 첨단 기술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신기술 메카에서 많은 이민자들은 창업이라는 꿈으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거두기도 한다.
물론 많은 창업자들은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자에게 주는 관용도 남다르다. 실패의 경험도 성공을 향한 사업 운영에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본보는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 ‘미래와 열정을 가슴에 품고’ 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며 세계 첨단 시장을 누비는 한국인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은 21세기 정보통신 혁명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인들의 현주소를 점검해보며 이들의 활약상을 총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케 될 것이다.
미래가 있는 곳에 한국인의 두뇌와 열정이 있듯이 실리콘밸리의 한인 네트워크 조성에 산실이 되고 이 곳에 진출할 한국 기업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하게 될 실리콘밸리 기업 열전에 많은 성원이 기대된다. <편집자 주>
=====
안경렌즈제조업체 CSC 그룹 김동국 회장
회사 설립 47년째, 세계적으로 규모와 품질 입증
자랑스러운 한국인 기상 미 주류 사회 널리 알려
=====
직원 대부분이 근무 경력 20년 넘어
오너의 솔선수범 직원들까지 이어져
=====
안경 렌즈 제조 전문 업체 CSC(Continental Sales Company)그룹은 여느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처럼 최첨단 하이테크 기술과 넉넉한 자본조차 없었던 토종 한인 1세 김동국 회장이 일구어 낸 기업이다.
샌프란시스코 남단 왓슨빌에 위치한 CSC 그룹은 지난 2011년 미국의 권위 있는 렌즈평가기관인 비전먼데이가 발표한 미국 내 렌즈기업 매출 규모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그 규모와 품질을 입증 받은 렌즈 제조 회사다.
고객의 어떤 주문에도 24시간이내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와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CSC그룹은 미국과 유럽의 거대한 다국적 렌즈업체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66년 김동국 회장이 맨주먹으로 설립한 CSC 그룹은 연매출 4천만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내 렌즈제조업계의 리딩 기업으로 200여명의 렌즈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수인력들이 CSC 그룹의 성장 동력이다. 그렇지만 세계 렌즈산업에 우뚝 선 CSC그룹의 결정체는 최고경영자인 김동국 회장이 40여 년간의 흘렸던 노력과 땀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58년 당시 24살의 김동국 회장은 법대 진학의 꿈을 안고 워싱턴 주의 Pacific Lutheran College로 유학 온다.
김 회장이 대학 졸업 후 몸담은 직장은 미국의 큰 금융회사였다. 196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금융 회사의 간부급 매니저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금융시스템과 재무에 밝았던 그가 어려움에 놓인 한국에 있는 작은 형의 안경무역수입제조회사를 도와준 것이 CSC 태동의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안경제조장비에 대한 담보보증으로 시작해서 상황이 안 좋아진 대구 안경회사를 직접 인수케 된 것이 지금의 CSC 그룹의 모체가 된 것이다.
김 회장은 부채와 재고만 쌓인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동안 직장생활을 해 모은 돈 1만 5천달러를 투자하고 직접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회사 빚이 많다 보니 은행에서 더 대출 받을 수도 없는 실정이어서 직원들을 고용할 수도 없는 처지인 김 회장은 직접 영업을 해서 국산안경을 미국 시장에 가져다가 파는 것으로 회사 운영은 시작됐다.
김 회장은 성공 해답의 숨겨진 비결로 1969년도산 폭스바겐을 꼽는다.
세일즈맨을 고용하는 것이 사치였던 그 시절 김동국 회장은 낡은 소형 폭스바겐을 타고 하루에 800 킬로가 넘게 운전해 다니며 미 서부 전역에서 발품을 팔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 네바다를 거쳐서 돌아오는 몇 천 킬로미터의 끝이 안 보이는 여정.
에어컨도 없는 차를 타고 여름이면 40도를 웃도는 사막을 지나고 겨울이면 운전대 밑의 발에 동상이 걸리는 고생을 마다 않고 며칠 밤낮을 달렸던 숱한 나날들, 힘들게 타주의 안과 의사들을 수소문해서 찾아가도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았던 힘든 영업 시절이었다.
그 당시 미국 안경시장은 서구 유명 회사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이에 비해 한국산안경 제품들의 인지도는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고객의 냉대에도 굽히지 않고 끊임없이 발로 찾아가는 김 회장의 열정적인 세일즈 자세는 미국 바이어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김동국 회장의 오랜 정성과 신의에 감복한 고객들은 앞 다투어 다른 고객들을 소개시켜 주어 회사는 빠른 시일 내에 급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지금의 CSC 왓슨빌 공장은 자동화 설비를 바탕으로 최첨단 코팅공법에다 첨단 제조시설을 거쳐 스타일이 가미된 고품격 렌즈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미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은 CSC그룹은 산호세에도 지점을 갖추고 있고 독일 마오이쯔 회사, 스페인의 바브토 안경, 블란서 코테 사로부터 미 서부 판매 독점권까지 획득했다. 이제 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렌즈 업체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올해 78세의 나이에도 어김없이 매일 회사로 아침 7시면 출근하는 김동국 회장. 아직도 회사의 CEO로서 경영 일선에서 회사 전반의 실무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오전 중에는 회사에서 업무처리를 하지만 오후에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럭을 몰며 업무 출장을 다닌다. 그의 인생은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맨발로 달려온 성실과 근면의 결정체였다. 2007년 산호세에서 열린 CSC그룹 창립40주년 기념 축하 행사장에서는 CSC의 성공 배경을 엿볼 수가 있었다. 지난 40년을 한결같이 김회장을 도와 동거 동락한 직원들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지금도 직원 대부분은 20년 이상 근무자들이다. 9시 출근해 5시 칼 퇴근하는 미국의 여느 직장과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하루 60~70시간이상 일하는 김회장과 같이 일하는 CSC그룹 직원들은 계속 되는 업무에도 불평하는 이가 없다.
오히려 CSC그룹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거의가 20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무자들인데 이직이 흔한 미국에서 20년 이상 장기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다수인 이 회사는 아랫사람이 존경할만한 롤 모델을 매니저들이 갖자는 것이다.
물론 그 일선에는 최고 경영자로서도 일선 세일에서 제조까지 몸소 챙기는 김동국 회장의 솔선수범적인 자세가 매니저들의 롤 모델이 된 것은 물론이다. 김동국 회장은 사업을 아들에게 인계하고 뒤에서 조언자로만 활동할 계획이다. 회사 고문 변호사로 10여 년째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 로버트 김씨가 제대로 사업체를 인계할 수 있도록 시간만 되면 회사 운영 기법을 전수한다.
김동국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그의 외조부이자 독립운동가인 송헌주 박사.
이승만, 김규식 박사와 함께 미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3인방으로 꼽히는 송헌주 박사는 중국의 상해 임시정부와 함께 미국의 한국 임시정부인 ‘구미위원부’ 의 대표 인물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참석하는 이준 열사 일행의 통역관으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해외독립투사로서의 명성을 날렸으나 같은 독립운동 멤버였던 이승만 박사의 견제를 받고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살고 있는 첫 부인과도 조우하지 못한 채 미국에서 생을 달리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송헌주 박사에게는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그 뒤를 대신하고 있었다.
송헌주 박사의 증손자이며 김동국 회장의 큰 아들인 마크 김 롱비치 법원장은 미국에서 최초로 임명된 한국인 2세 판사이다.
불과 36세의 나이로 판사로 임명된 실력파로서 미국 법조계의 몇 안 되는 소수인종출신 스타급 판사이다.
김 회장 가문의 미주 이민사 1대 송헌주 박사는 독립운동가로서 시대를 풍미한 아이비리그 박사 1호.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으킨 김동국 회장은 가문 이민사의 3대 성공 한인, 그리고 뒤를 이어 한인 최초 연방지검 판사 마크 김은 4세 한인 이민자.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기상을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린 김동국 회장과 그 가족들은 몸은 미국에 있지만 조국애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애국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후손들에게 한국을 잊지 말라는 애국정신 주입은 필수적이다. 그래서인지 김동국 회장 눈가에 어린 세월의 주름에는 아메리카 드림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땀 그리고 쉼 없는 배움이 잘 녹아있음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홍민기 편집위원>
==
올해 78세의 김동국 CSC그룹 회장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맨발로 달려온 성실과 근면의 결정체로 불린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